The Linguistic Ambiguity and Love in De doctrina christiana Ⅰ-Ⅲ

Research
신 경수  Kyungsoo Shin1*

Abstract

Augustine emphasized communication through illuminatio Divina or logos Divina by discussing the limitations of human language in De magistro and De Trinitate. So Augustine takes the same sceptical stance as the Academy on human language tastes? To answer these questions, this paper will explore De doctrina christiana I-III. De doctrina christiana is distinguished from the two works in that despite discussing linguistic limitations, language theory is explored in the practical research horizon of biblical interpretation. He is not misled by sceptical understanding of language by placing the goal of language theory in De doctrina christiana in the correct interpretation of the Bible and the exploration of the divine reality behind the Bible. He first explains the types and meanings of signum in the I-III volume of De doctrina christiana, and then presents regular ways to resolve the errors of each signum. Among them, ambigua signa translata is the most likely error in interpretation, no different from what Augustine refers to as the limitation of language. Augustinus argues that in order to avoid the fallacy of ambigua signa translata, the Bible's intention, the point of view of caritas and the exclusion of cupiditas, should be taken as a reference point. In addition, he presents the practical language training needed by researchers to solve linguistic ambiguity.

Keyword



Ⅰ. 서론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언어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물(res)과 기호(signum)의 우연적 결합을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회의주의적 언어관과 유사한 논의를 편다. 예컨대, 아카데미학파 회의주의는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 언어와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앎에 대해서 판단유보(epoche)하는 것이 명확히 말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태도이다.1

아우구스티누스는 『교사론』(De magistro, 389)에서 사물과 기호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2 그에 따르면, 말은 단순히 관념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이다. 교사는 자신이 표현하는 실재를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없고 언어적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수행할 수 있다. 3오직 신만이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 실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내면의 교사(magister interior)’로 불린다. 4『삼위일체론』(De Trinitate, 399-421)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어 기호의 한계를 논의하기 위해 ‘신적 말씀(logos divinus)’의 본질을 고찰한다.5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신적 말씀인 내면의 말은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실재를 직접 나타내는 데 반해, 인간의 언어는 전달 과정에서 기호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호는 항상 애매함과 모호함 가운데 놓여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혼란을 주거나 올바른 가르침을 방해할 여지가 있다.6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언어 기호에 대해 회의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인가? 본 논문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397-426)Ⅰ-Ⅲ권을 탐색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양』은 『교사론』과 『삼위일체론』의 언어적 한계에 대한 논의와 같은 맥락에 있지만, 언어 이론을 성경 해석이라는 실제적인 연구의 지평에서 탐구한다는 점에서 두 저작들과 구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그리스도교 교양』에 전개된 언어 이론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아우구스티누스 언어이론 연구의 경우, 이희용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논의하며,7 장재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언어 수용 과정을 전반적으로 논의한다.8 김경희는 박사논문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기호 이론 전반을 다루면서 『그리스도교 교양』의 기호 이론을 상당부분 논의하고 있지만, 언어적 모호성(ambiguitas)과 그 해결책인 사랑(caritas)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명하지 않았다.9 따라서 『그리스도교 교양』의 언어 이론, 특히 언어적 모호성과 사랑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는 의미 있는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의 목표를 성경의 올바른 해석과 성경 이면의 신적 실재에 대한 탐구에 두기 때문에 회의적인 언어 이해에 경도되지 않는다. 마커스(R. A. Markus)의 주장대로, 죄와 타락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은 고대의 언어 이론과 차이가 없다.10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에서 기호를 분류한 후 각 기호의 특성을 밝히고, 실재에 어긋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호의 일반적 문제와 모호성을 해결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그 중 ‘모호한 전의적 기호(ambigua signa translata)는 해석에 있어 오류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언어의 한계로 지칭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의도인 사랑의 견지와 욕망의 배제를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그는 전의적 기호의 모호성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에게 필요한 실제적 언어 훈련을 제시한다. 이로써 그는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성경의 모호한 내용 또한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논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언어 기호 및 언어적 모호성을 정위(正位)하고, 언어적 모호성의 해결책으로서 사랑의 역할을 탐색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해, 먼저 아우구스티누스 언어 이론의 전제인 doctrina의 분과로서의 배치와 성경 연구의 토대로서 언어 이해에 대해 밝히고, 실재로서 사물의 구분에 대해 살필 것이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에 나타난 실재의 전달자로서 기호의 종류와 특성, 기호의 일반적인 문제를 다룬 후, 언어의 모호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해결책을 탐색할 것이다.

Ⅱ. 아우구스티누스 언어 이론의 전제

1. 성경 연구의 토대로서 언어 이론

『그리스도교 교양』의 제목은 기독교 문화나 교육에 대한 내용을 기대하게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전적으로 성경 연구에 관한 것이다. 물론 그가 이 저작에서 기독교 교육구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특별히 기독교 문화의 발전을 위해 고전 학문 전통을 자세히 검토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그러한 내용은 작은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11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심은 성경의 말씀이 의미하는 사물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당시에 히에로니무스를 통해 라틴어 성경이 번역되기는 했지만, 라틴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이 ‘성경학(scripturarum ars)’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체계적인 해석의 기술을 결코 배운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성경 해석을 하려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제정 시기에 전형적이었던 기독교와 이교도의 텍스트 비판분석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따라서『그리스도교 교양』 Ⅰ-Ⅲ권에 걸쳐 주제를 형성하는 ‘성경 연구(tractatio scripturarum)’는 tractatio로 알려진 고대 말기의 문법적인 텍스트 분석과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12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 Ⅰ-Ⅲ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을 발견하는 방법(modus inveniendi quae intelligenda sunt)’으로, Ⅳ권을 ‘이해된 것을 표현하는 방법(modus proferendi quae intellecta sunt)’으로 구성한다.13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은 성경에 대한 해석학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이 담겨있다.

먼저,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론이 『그리스도교 교양』의 분과로 배치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에릭슨(Keith V. Erickson)은 저작의 개념 이해는 저작의 구성과 제목에 기초할 때 가장 잘 이해된다는 점을 들어 doctrina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doctrina는 로마인들의 정신에 다양한 의미를 끌어내는 다차원적인 개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doctrina를 사용함으로써 Ⅰ권에서 Ⅳ권까지 일관성을 부여한다.14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침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docere가 아니라, 절대적 가르침을 지칭하는 doctrina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과업이 절대적 지식, 즉 진리의 탐색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15 포틴(Ernest L. Fortin)에 따르면, doceredoctrina의 의미에 대한 구분은 키케로에 의한 것이다. 오래되고 더 중립적인 단어이자 어떤 종류의 지식이나 정보가 다른 이에게 전해지도록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docere와는 대조적으로 doctrina는 키케로의 대화와 논고에서 그리스어 episteme의 등가어로서 철학적 탐구 목적과 기능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키케로는 『웅변가』(Orator, 78)에서 연설의 수사학적 상황에서의 가르침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수사학을 설명하면서 의식적으로 절대적 가르침을 의미하는 doctrina를 사용하지 않고, docere 용어를 사용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어 이론을 doctrina의 분과로 배치함으로써 회의주의의 언어 이해와 구분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 언어의 불완전함을 주장함으로써 회의주의적인 관점을 드러내지만, 언어를 통해 절대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논의로 나아간다.

다음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은 성경의 내용이나 의미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에서 inventio로서 Ⅰ권에서 성경의 사물에 대해 다루고, Ⅱ권과 Ⅲ권에서 성경의 실재를 의미해주는 기호에 대해 논한다. Ⅳ권은 elocutio로서 성경의 진리를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16 inventio(논거 발견)17는 『그리스도교 교양』의 4분의 3에 해당될 정도로 논의의 중심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inventio가 성공적인 논증 양식에 기여할 뿐 아니라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면서 inventio에 새 역할을 귀속시킨다. inventio의 목적은 성경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에『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사물과 기호라는 용어는 다른 저작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어 이론의 핵심 개념인 사물과 기호를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신적 실재’와 ‘성경’의 관계로 구체화한다. 여기서 사물은 설교자의 성경 연구(tractatio scripturarum)의 결과물이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중시하는 사물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성경 연구자들과 독자들은 성경의 기호에서 신적 사물, 즉 신의 실재로 나아가야 한다.18 성경의 가르침을 명심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사물, 즉 실재를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텍스트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실재가 언어와 문자에 의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은 성경 연구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의 최종 목적은 성경에 대한 해석에 있다. 중요한 문제는 성경이 기호로 메시지를 나타내거나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Ⅱ권과 Ⅲ권에서 기호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그에 의하면, 신은 성경을 통하여 인간과 소통할 때 언어의 기호를 사용하며, 인간은 이 기호의 정보를 정확히 해석해야만 한다. 기호의 의미가 정확히 해석되지 못하면, 기호는 결국 자신이 상징하는 실재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은 사물, 즉 실재에 대한 논의에서 실재를 나타내는 기호에 대한 논의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2. 사물에 대한 구분

『그리스도교 교양』은 사물(res)과 기호(signum)의 구분으로 시작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양』의 시작부에서 두 가지 사랑 방식인 향유하는(frui) 사물과 사용하는(uti) 사물을 구분한다. 사용이 향유에 지시되듯 기호는 사물에게 지시된 것이다. 모든 기호는 또한 사물, 즉 실재이지만 모든 실재가 기호인 것은 아니다. 누구도 무언가를 의미하는 목적 외에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은 사물에 관한 것이거나 기호에 관한 것이지만, 사물은 기호를 통해 그 의미가 학습된다.”19라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향유는 ‘그 자체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고, 사용은 ‘다른 것을 위해 사랑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물에 관해 더 자세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해 사물을 세 개의 범주로 구분한다. 그것은 향유되는 사물과 사용되는 사물 그리고 향유되면서 사용되는 사물이다.20 향유되는 사물은 사랑을 통해 대상에 도달하는 이들에게 참된 만족인 행복(beatitudo)을 가져온다. 또한 어떤 사물은 스스로는 참된 만족을 제공하지 못하지만 사용됨으로써 그들이 도달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21

하위(George Howie)의 말처럼, 아우구스티누스가 기호의 지시 대상인 최종목적을 위해 기호를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기호가 상징하는 신적 실재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22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물에 관한 탐구는 사물 자체에 대해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 그 사물이 의미하고자 하는 다른 사물에 집중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한다.”라고 말한다.23 그에 따르면, 유일하게 적합한 사랑의 대상이란 실재 자체인 신이기 때문에 인간은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사물을 통하여 정신적이고 영원한 것을 이해해야 한다.24 아우구스티누스는 여행의 은유에서 실재를 추구하는 것과 실재를 의미하는 사물을 추구하는 것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방랑자로서 고향이 아니고서는 행복할 수 없기에 이 비참한 방랑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향유의 대상인 고향으로 가는 데에 육로와 항로의 운송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의 즐거움과 운송 수단을 통한 움직임이 우리를 기쁘게 해준다면, 그래서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향유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여정이 빨리 끝나길 바라지 않을 것이고, 잘못된 감미로움에 빠져 우리를 행복하게 했을 고향과는 멀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삶에서 헤매는 우리가 행복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사용하되 향유해서는 안 된다.25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자체를 위해 사랑할 수 없는 사물을 사랑의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고유하게 향유되는 사물을 그 자체를 위해서 사랑하지 않고 남용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사용할 대상이 사실상 향유의 대상만이 제공할 수 있는 만족을 공급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요구는 자기 기만적이므로 반드시 자멸하기 때문이다.26

마커스(R. A. Markus)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해석이 그의 언어 이론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특징이라고 평가한다.27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진정한 만족을 제공하는 하나의 사물이며, 그 자체를 위해 사랑받는 단 한 가지 사물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는 신이 일반적인 의미의 사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28 그에 따르면, 만약 사물이 그 자체를 위해 향유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웃은 향유되고 사용될 수 있는 사물이며, ‘신을 향해서(in Deum)’ 혹은 ‘신 때문에(propter Deum)’ 사랑받는다. 이웃은 다른 이들과 함께 신을 즐거워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29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질서 있게 고정된 사랑이며 사물의 객관적인 질서와 일치하는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올바르게 지시된 사랑으로서 사랑받지 말아야 할 대상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받아야 할 대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부적절한 정도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30

Ⅲ. 실재의 전달자로서 기호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분석

아우구스티누스는 기호가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와 인위적이고 비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에 의하면, 기호로서의 표상은 인간이 의미의 나라에 다다르면, 불필요한 방해물로서 제거의 대상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기호를 두 번 정의하고 있다. 먼저, 기호란 어떤 사물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31 이는 기호, 기호의 사용자, 의미하는 사물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다음으로, 기호는 그것이 감각에 만들어 내는 인상 외에 어떤 사물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32 아우구스티누스는 기호와 기호를 인식하는 자 그리고 인식자의 마음에 가져오는 추가적인 사물 사이의 관계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33

기호는 그것이 감각에 주입하는 인상과 다른 것을 내어놓아, 기호 자체와 관련된 다른 사물이 우리 생각 속에 떠오르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발자국을 보고서 그 발자국을 가진 동물이 지나갔다고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연기를 볼 때 부근에 불이 났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낀다.34

이 예에서 보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의미를 유발하는 모든 표상을 기호로 인식한다. 그는 기호를 분석하기 위해 크게 ‘자연적 기호(signa naturalia)’와 ‘약정적 기호(signa data)’로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먼저, 그는 자연적 기호에 대해 ‘누군가의 의도나 욕망 없이 그 사물 자체로부터 다른 사물을 알게 하는 것, 가령 불을 가리키는 연기와 같은 것’으로 정의한다.35 자연적 기호는 인과적 의존, 논리적 함축, 행동 양식에 의해 어떤 사물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사물을 관찰(animadversione)하고 주목(notatione)함으로써 사물과 기호의 연관성에 관한 방식을 알게 된다. 자연적 기호의 경우, 기호와 의미된 사물 사이의 연관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어느 하나를 다른 것에 대한 기호로 간주하는 식으로 두 개의 사물을 관련지어 규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연적 기호는 이런 저런 사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관계에 의해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일 뿐이다.36 자연적 기호는 아우구스티누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며 단지 완전함을 위해 언급될 뿐이다.37

다음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약정적(約定的) 기호에 대해 ‘생명체(viventia)가 감정이나 인식,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한다.38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약정적 기호는 기호 제공자의 의도가 담겨 있는 사물들로 구성된다. 그는 약정적 기호가 자연적 기호와 다르게 명백하게 의사소통을 의도한다고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약정적 기호의 주체를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로 상정하는 이유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약정적 기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닭이나 비둘기 또한 약정적 기호를 통해 의사소통한다고 설명한다.3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생명체들의 수많은 약정적 기호 중에서 인간의 기호가 가장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기호는 대부분 시각과 청각에 의한 것인데, 고개를 끄덕이기나 손짓처럼 비교적 단순한 것도 있고, 지휘관이 군대를 통솔할 때 사용하는 깃발처럼 복잡한 것들도 있다.40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간의 기호 중에서도 언어는 가장 다양하고 복잡한 기호이기 때문에 인간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기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인간의 말(verba)은 기호가 취하는 가장 뚜렷한 형태로서 어떤 의미를 의도할 때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41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어를 눈에 보이게끔 고정시킨 것이 문자라고 설명한다.42 그는 민족마다 언어 기호가 다른 것과 성경의 언어가 하나에서 수많은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연결시킴으로써 기호의 모호성에 대한 문제를 성경 해석의 모호성의 문제로 구체화한다.43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약정적 기호를 다시 ‘고유한 기호(signa propria)’와 ‘전의적 기호(signa translata)’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고유한 기호는 사물을 의미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사용되는 기호이다. 이는 황소를 의미하려고 황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전의적(轉義的) 기호는 사물이 어떤 추가적인 사물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호이다. 이는 황소라는 단어의 이차적인 의미인 복음전도자를 나타내는 경우이다. 주의할 점은 고유한 기호나 전의적 기호가 모르는(ignota) 것이나 모호한(ambigua)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고유한 기호의 경우에, ‘모르는 고유한 기호(ignota signa propria)’나 ‘모호한 고유한 기호(ambigua signa propria)’의 문제는 규칙적인 방법에 의해 해결이 가능하다. 먼저, 모르는 고유한 기호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번역된 성경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모르는 고유한 기호에 관한 해결책은 성경의 언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배우거나 적어도 라틴어로 번역한 여러 성경을 대조하여 확인하는 것이다.44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할렐루야, 호산나 같은 감탄사가 이따금 번역되지 않는다거나 종종 무수한 다양성을 지닌 번역이 저마다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 언어의 지식, 즉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아는 것이 유익하다고 강조한다.45

다음으로, 모호한 고유한 기호의 경우에는 모르는 고유한 기호보다는 어렵지만, 여러 번역본을 관찰하면 모호한 구절도 해석이 가능하다.46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컨대 이사야서 한 구절을 두고 한 번역자는 “너의 씨의 가족을 무시하지 마라”로 직역하고, 다른 번역자는 “너의 살을 무시하지 마라”로 번역하였는데, 이로써 서로 뜻이 보충된다. 두 번역이 서로 설명이 되어, 고유한 의미로 살을 해석하여 자기의 육체, 즉 자기 스스로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인식되거나 전의적 의미로 씨의 가족을 해석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말씀의 씨로 함께 태어난 영적 가족의 뜻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제 번역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비교해보면, 이 말씀의 본래 뜻은 혈육을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점이 드러난다.47

모호한 고유적 기호는 문장을 잘못 끊어 읽거나 발음을 잘못함으로써 발생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신앙의 규범을 기준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신앙의 규범이란 성경 안에서 분명히 해석될 수 있는 장과 절이나 교회의 교리를 말한다.48 그리고 음절의 발음이 의심스러워서 뜻이 모호한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호한 고유한 기호의 문제는 대부분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을 통해 해결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음절의 발음이 의심스러우면 같은 문장에 속하는 가까운 단어를 비교하면서 판단하라고 조언한다.49 그에 따르면, 모호한 고유한 기호의 문제는 최소한 성경 해석에 한해 발언의 배경이나 번역본들의 대조 혹은 원본의 검토를 통해서 거의 모두 해결될 수 있다.50

반면 ‘전의적 기호’의 경우에는 모호성에 대한 상당한 주의와 노력을 요한다. 전의적 기호는 일반적으로 ‘비유적 기호’로 번역되는데,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유한 어휘로 인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종 figurata(비유)를 translata(전의)의 동의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51 먼저, ‘모르는 전의적 기호(ignota signa translata)’의 경우는 해석자가 특별한 의미를 얻어야 하는 어떤 역사적, 자연적 사실에 무지할 때에 자주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 때 해석자는 이와 관련된 학문, 즉 동물학이나 식물학 등을 참고하여 그 비유의 기본을 형성하는 사실이나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52 이는 해석자를 이교 학문으로 이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 Ⅱ.19.29.에서 Ⅱ.42.63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이교 학문을 분석하고 철저히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53

다음으로, ‘모호한 전의적 기호(ambigua signa translata)’의 경우에는 해석이 녹록치 않다. 전의적 기호가 모호한 전의적 기호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비유적인 문학 작품의 해석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 비유는 항상 해석상의 문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언어의 한계는 성경 해석에 있어 모호한 전의적 기호와 연관된다. 다시 말해, 약정적 기호 중에서 고유한 기호의 문제, 즉 모르는 고유한 기호나 모호한 고유한 기호에 나타나는 문제는 해석을 위한 규칙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반면 전의적 기호는 항상 모호한 전의적 기호가 되어 오류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이 쉽지 않다. 성경 연구자가 모호한 전의적 기호에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결국 그는 언어 기호의 궁극적인 의미를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에 대한 해결책에 공을 들인다.

Ⅳ.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문제와 해결책으로서 사랑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 해석자들에게 전의적 기호의 모호함에 대해 많은 주의와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양』Ⅲ권 5.9에서 29.41까지 많은 분량을 모호한 전의적 기호에 할애함으로써 이 주제가 기호 이론에서 중요한 문제임을 드러낸다. 뱁콕(William S. Babcock)의 주장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기호 이론은 성경에 나타난 기호가 다른 뜻이나 다른 특정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54 아우구스티누스는 전의적 기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텍스트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모르는 기호, 즉 전문 지식영역과 관련된 문제보다는 모호한 기호 때문이다. 모호한 기호는 기본적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할지 아니면 비유적으로 해석할지의 문제를 담지하고 있다.55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문제가 해석상 고유한 기호와의 혼동에서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즉 전의적 기호는 자칫 궁극적인 의미로부터 단절된 채 전의적 기호를 고유한 기호로 혹은 고유한 기호를 전의적 기호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모호한 전의적 기호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 논의의 쟁점은 “어떻게 한 가지 사물이 다른 것의 기호로 여겨지는가?” 혹은 “하나의 사물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받는가?”라는 문제에서 도출된다. 이는 “어떻게 성경에서 어떤 언어 기호가 전의적인가를 알 수 있으며 어떤 것은 고유적인지를 알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언제 성경에서 언어기호로 의미되는 사물 자체가 어떤 추가적인 사물을 의미하는지, 또 언제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촉발한다. 그가 볼 때, 이러한 의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영혼은 사물을 기호로서 착각하는 비참한 노예상태에 빠지게 된다.

전의적 기호를 고유한 기호로 간주하는 것은 육적으로 알아듣는 것이다...... 문자적 해석을 따르는 이는 전의적 기호를 고유한 기호로 간주하며, 그 기호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예컨대, 안식일을 단순히 일주일 중에 하루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만 이해하거나 제물이 그저 동물이나 땅의 소산을 바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만 이해한다. 이처럼 전의적 기호를 사물 자체로 인식하고, 감각적 피조물을 초월하여 영원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영의 눈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은 영혼이 종노릇하는 것이다.56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인들의 오독처럼 기호에 대한 초점을 기호가 의미하는 사물로 전환하지 않고 오직 문자에만 집중하는 것은 영적 노예의 특징이라고 말한다.57 더 나아가 유대인들보다 더 잘못된 것은 이교도들처럼 무익하거나 허구인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라고 설명한다.58 아우구스티누스가 볼 때, 이교도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기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은 거짓 신들만 만들어낼 뿐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의 해석상의 어려움, 즉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문제를 미결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는다. 모호한 전의적 기호에 대한 해결책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이는 한편으로는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caritas Dei et proximi), 즉 이중 사랑(gemina caritas)을 견지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기본적인 욕망(cupiditas)을 억제하는 것이다.59 그는 성경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의미가 지배적인 사회 관습에 뿌리 내리고 강화되게 하기 위해서 오직 사랑만을 규정하고 욕망을 규탄하여 균형을 이룬다고 강조한다.60 그에 의하면, 해석자는 성경의 의도가 사랑이고 욕망을 파괴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정욕의 왕국이 파괴되면 될수록 사랑의 나라는 더욱 융성한다.61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저자의 목적(voluntas)과 의도(sententia)를 중요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62 즉 그는 본질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공정하게 다루는 해석을 중요시한다.63 아우구스티누스는 기호와 영혼의 움직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고대 기호 이론과 바울의 인류학적 해석을 결합한다. 죄와 타락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 없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기호 이론은 고대 기호 이론과 별 차이가 없다.64

먼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이중 사랑은 성경 언어가 고유한 기호인지 혹은 전의적 기호인지 발견하는 방법의 기준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일반적으로 문자대로의 진술이 행위들의 올바름(morum honestas)이나 신앙의 진리(fidei veritas) 중 하나와 상충한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전의적 기호, 즉 비유적 의미(figurata locutio)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언사가 고유한 것인지 혹은 전의적 것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확립되어야 한다. 성경의 내용이 고유한 의미에서 도덕의 온전함이나 신앙의 진리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이는 비유적인 것이다. 도덕의 완전함은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고, 신앙의 진리는 신과 이웃을 아는 일과 관련된다. 65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떤 이들이 성경을 이해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만일 그들의 견해가 신과 이웃에 대한 이중 사랑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직 이해한 적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성경 독자의 의지가 사랑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성경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거나 고의로 거부한 것이다.66 이에 반해 이중사랑을 강화시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은 성경 저자들이 실제로 유념했던 것을 오해한다 하더라도 중대한 잘못은 피하게 될 것이다.67 그래서 그는 “믿음, 소망, 사랑에 의해, 그리고 그것들을 견고히 붙들어 떠받쳐지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성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성경이 없이도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있다.”68라고 말할 수 있었다. 즉 신적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 성경을 해석하는 기독교 교사는 선한 사람이나 신을 악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잘못된 성경 해석을 분별할 수 있다.69

다음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를 이중 사랑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성경을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기자고 주장하는 이들이라도 욕망으로 인해 모호한 전의적 기호를 오독하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한다. 언어가 인간의 욕망과의 불가분의 관계로 인해 근본적으로 유동성과 변위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인식은 『그리스도교 교양』의 전체 논의의 기초이다.70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욕망은 신의 사랑이 없는 상태의 행위로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탐욕을 의미한다. 그는 사랑과 욕망에 대해 “나는 사랑이란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유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이웃을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욕망이란 하나님 외에 다른 의도로 인해 자기 자신과 이웃과 사물을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라고 설명한다.71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해석에 있어 욕망을 배제해야 하는 이유는 욕망이 독자들로 하여금 개인적, 문화적 규범 및 관행을 지지하는 정도에 따라서 본문의 비유 수준을 결정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만일 본문의 해석이 고유한 기호로서 독자의 욕망을 지지해주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독자는 본문을 고유한 기호로 해석할 것이다. 반대로 본문이 독자의 욕망과 상충한다면, 그는 전의적 기호로 해석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일반사람들에게 올바른 행위란 상대적인 것으로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관습(consuetudo)’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죄를 판단할 때 욕망 자체의 경중보다는 자기 관습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 지역이나 시대의 인간들이 책망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비난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관습에서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칭찬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만일 성경에서 청중 자신의 관습에서 벗어난 것을 비난한다면, 청중은 그 말을 고유한 기호라고 생각할 것이다.72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자신의 관습과 기준에 따라 판단하려는 인간의 성향은 어떠한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이 언어 기호로 의미된 사물에 실제로는 갖고 있지 않은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실제로 갖고 있는 추가적인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성경을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조화를 이루려하는 것을 염려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제적인 예를 통해 이중 사랑의 견지와 욕망의 배제가 어떻게 모호한 전의적 기호를 방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먼저, 신이나 성경의 저자가 어떠한 문제에 대해 책망하거나 가혹하게 발언할 때에는 고유한 기호로 해석해야지 전의적 기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발언은 모두 욕망의 왕국을 파괴하기 위해서 수행된 것이기 때문이다.73 다음으로, 신이나 성경의 저자가 초심자들이 보기에 악한 것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에는 전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선량한 자의 이러한 행위는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누군가 동시대인들의 관습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했다면, 이는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거나 혹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는 같은 일이라도 누가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는 보통 도덕적 문제를 야기하는 일도 성자가 했을 때는 전의적 기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74이밖에도 그는 Ⅱ.11.17에서 Ⅱ.25.34까지 다양한 실례를 들어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의 본문이 전의적 기호로 판명된 이후로도 세밀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나의 단어가 언제 어디서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75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어가 한두 가지 다른 뜻만 담지 않고 문장에 들어갈 때마다 수많은 뜻을 지니기도 하며, 같은 구절이 다양하게 이해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76 따라서 그는 모호한 구절에 대해서는 성경의 다른 구절에 비추어 해석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77

아우구스티누스는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무수하고 다양한 관습 가운데서 기독교 교사가 도덕적 상대주의에 경도될 것을 염려한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교사들 또한 신이 복잡한 인생을 돕기 위해 분명한 지침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78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볼 때, 이중사랑의 견지 및 욕망의 배제와 더불어 전의적 기호에 대한 해석상의 훈련을 충실히 한다면,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성경의 모호한 내용도 해석이 불가능하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해석자가 전의적 기호의 법칙, 가령 우의·풍자·비유·직유법·은유법·오용법·반어법 등에 관한 지식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을 동기 부여한다.79

Ⅴ. 결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일반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docere가 아니라, 절대적 가르침을 의미하는 doctrina를 사용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양』을 Ⅰ-Ⅲ권의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과 Ⅳ권의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구분하는데,80 그의 언어이론은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의 일부분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언어 이론을 『그리스도교 교양』의 분과로 배치함으로써 언어 이론을 절대적 진리, 즉 성경을 연구하기 위한 도구로 상정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의 Ⅰ-Ⅲ권을 성경 해석 시 다루어야 할 다양한 사물과 기호를 논하는 데 할애함으로써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원칙들을 충실하게 제시한다. 그는 언어 이론의 핵심 개념인 사물과 기호를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신적 실재와 성경의 관계로 구체화한다. 그에 따르면, 성경 연구자들과 독자들은 성경의 기호에서 신적 실재로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서 성경 이면의 신적 실재를 이해해야 한다. 즉 연구자는 텍스트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물이 언어와 문자에 의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Ⅱ권과 Ⅲ권에서 언어 기호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교 교양』에 전개된 언어 이론은 인간 언어의 한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의 목적과 의도라는 해석상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신적 개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교사론』과 『삼위일체론』에서 진일보한 입장을 취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언어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모호한 전의적 기호와 다름이 없다. 그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에 대한 처방으로 성경 저자의 의도에 충실한 이중 사랑의 견지와 욕망의 배제를 해석 기준으로 제시한다.81 그에 따르면, 성경의 모호한 전의적 기호는 인간적 능력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의미 체계가 인간의 협의와 공유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오로지 인간 제도에만 의존하는 의미 체계는 사회적 약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은 사회적 언어 체계가 결국 공통된 사랑을 심어주기보다 개인의 욕망에 맞춰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볼 때, 그러한 체계는 잘못된 욕망을 현실화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에 대한 제거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악행을 범하게 하는 탐욕에 뿌리 내리고 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 저자들의 의도인 이중 사랑만이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과 성경 이면의 신적 실재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회의적인 언어 이해에 경도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교사의 훈련을 통해 언어의 한계가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82 예컨대, 그는 교사가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함으로써 학문적 정당화에 이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83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해석상의 훈련이 뒷받침 된다면, 독자를 당황하게 하는 성경의 모호한 내용도 해석이 불가능하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은 언어의 한계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회의주의적 언어 이해와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해는 기독교 교육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성경 해석의 난맥상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논의하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는 비유와 동일한 것이다. 성경 해석의 난맥상은 대부분 비유에 대한 해석상의 오류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기호 이론의 연구는 기독교 교육의 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비유에 발생하는 모호한 점들이 교사의 훈련을 위한 신의 섭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84 천착한 후속 연구가 요구된다. 본 논문의 논의를 바탕으로 향후 성경의 비유 해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 이론 및 교육론의 지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요약

아우구스티누스는 『교사론』과 『삼위일체론』에서 인간 언어의 한계를 논함으로써 ‘신적 조명’이나 ‘신적 말씀’을 통한 언어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언어 기호에 대해 회의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인가? 본 논문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을 탐색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양』은 언어적 한계에 대해 논의함에도 불구하고, 언어 이론을 성경 해석이라는 실제적인 연구의 지평에서 탐구한다는 점에서 두 저작과 구분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언어 이론의 목표를 성경의 올바른 해석과 성경 이면의 신적 실재에 대한 탐구에 둠으로써 회의주의적 언어 이해에 경도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양』Ⅰ-Ⅲ권에서 먼저 기호들의 종류와 그 의미를 설명하고, 다음으로 각 기호의 오류를 해결할 수 있는 규칙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 중 모호한 전의적(轉義的) 기호는 해석에 있어 오류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언어의 한계로 지칭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호한 전의적 기호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의도인 사랑의 견지와 욕망의 배제를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그는 언어적 모호성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에게 필요한 실제적 언어 훈련을 제시한다.

주제어 : 사물, 기호, 모호성, 사랑, 욕망

Footnotes

1 신경수, 「아우구스티누스 자유교육의 인식론적 근거」 , 『철학논총』 89집3권(대구: 새한철학회, 2017), 136쪽.

2 De magistro, 7.19-20.

3 De magistro, 8.22.

4 De magistro, 10.32.

5 De Trinitate, Ⅸ.7.12;ⅩⅤ.10.17-16.26.

6 De Trinitate, Ⅸ,7.12.

7 이희용,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적 말론」, 『중세철학』 제13호(서울: 한국중세철학회, 2007).

8 장재호,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언어 수용 과정 연구」, 『신학연구』 제72집(오산: 한신신학연구소, 2018).

9 김경희,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어-기호 이론 연구』(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2).

10 R. A. Markus, “Communication and Communities in Augustine’s De doctrina christiana”, Edit. by Duane W. H. Arnole & Pamela Bright, A Classic of Western Culture(Notre Dame: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1995), p.130.

11 Willian S. Babcock, “Caritas and Signification in De doctrina christiana 1-3”, Edit. by Duane W. H. Arnole & Pamela Bright, A Classic of Western Culture(Notre Dame: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1995), p.146.

12 Catherine M. Chin, “The Grammarian’s Spoils: De doctrina Christinana and the Contexts or Literary Education”, Edit. by Karla Pollmann & Mark Vessey, Augustin and the Disciplines from Cassiciacum to Confession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165.

13 De doctrina christiana, Ⅰ.1.1. (이하 DDC로 표기)

14 Keith V. Erikson, “The Significance of doctrina In Augustine’s De doctrina christiana”, Rhetoric Scociety Quarterly(15)(Taylor & Francis Ltd., 1985), p.105.

15 Ernest L. Fortin, “Augustine and the Problem of Christian Rhetoric”, The Rhetoric of St. Augustine of Hippo, Edit. by Richard Leo Enos Et al.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08), p.225.

16 Christoph Schaublin, “De doctrina christiana: A Classic of Western Culture?”, Edit. by Duane W. H. Arnole & Pamela Bright, A Classic of Western Culture(Notre Dame: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1995), p.55.

17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차적인 관심은 성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방법(modus inveniendi)에 있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전 수사학의 요소인 논거발견(inventio), 배열(dispositio), 표현(elocutio), 기억(memoria), 연기(pronunciatio)를 암시하고 있다(De institutione oratoria, Ⅲ.3.1). 사실상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논의를 inventioelocutio로 제한한다.

18 Catherine M. Chin, “The Grammarian’s Spoils: De doctrina Christinana and the Contexts or Literary Education”, p.169.

19 DDC, Ⅰ.2.2.

20 DDC, Ⅰ.3.3.

21 DDC, Ⅰ.3.3.

22 George Howie, Educational theory and practice in St. Augustine(Teachers College Press, 1969), p.211.

23 DDC, Ⅰ.2.2.

24 DDC, Ⅰ.4.4-1.5.5.

25 DDC, Ⅰ.4.4.

26 DDC, Ⅰ.4.4.

27 R. A. Markus, “Communication and Communities in Augustine’s De doctrina christiana”, p.101.

28 DDC, Ⅰ.5.5.

29 DDC, Ⅰ.22.20; 27.28; 29.30.

30 DDC, Ⅰ.27.28.

31 DDC, Ⅰ.2.2.

32 DDC, Ⅱ.1.1.

33 의미와 수단의 이원성은 중세 시대가 일반적으로 allegoria(비유)라고 지칭하던 것인데 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다른 것을 말하여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기술이다: Archibald M. Young, “Some Aspects of St. Augustine’s Literary Aesthetics, Studied Chiefly in De doctrina Christinan”, The Harard Theological Review 62(3)(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9), p.292.

34 DDC, Ⅱ.1.1.

35 DDC, Ⅱ.1.2.

36 Willian S. Babcock, “Caritas and Signification in De doctrina christiana 1-3”, p.151.

37 Gerard Watson, “Saint Augustine’s Theory of Language”, The Rhetoric of St. Augustine of Hippo, Edit. by Richard Leo Enos Et al.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08), p.262.

38 DDC, Ⅱ.2.3.

39 DDC, Ⅱ.2.3.

40 DDC, Ⅱ.3.4.

41 DDC, Ⅱ.3.4.

42 DDC, Ⅱ.4.5.

43 DDC, Ⅱ.5.6.

44 DDC, Ⅱ.9.16-15.22.

45 DDC, Ⅱ.11.16.

46 DDC, Ⅱ.12.17.

47 DDC, Ⅱ.12.17.

48 DDC, Ⅲ.2.2.

49 DDC, Ⅲ.3.7.

50 DDC, Ⅲ.4.8.

51 Willian S. Babcock, “Caritas and Signification in De doctrina christiana 1-3”, p.151.

52 DDC, Ⅱ.16.24.

53 DDC, Ⅱ.19.29.

54 Willian S. Babcock, “Caritas and Signification in De doctrina christiana 1-3”, p.146.

55 Christoph Schaublin, “De doctrina christiana: A Classic of Western Culture?”, p.49.

56 DDC, Ⅲ.5.9.

57 DDC, Ⅲ.5.9.

58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넵투누스와 바다 둘 다를 섬기지 않는데, 넵투누스가 바다와 물을 상징한다는 것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전의적 기호인 넵투누스와 그 사물인 바다 모두 신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의 오독이 유대인들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오독은 교정에 대한 어떤 기초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유대교의 문자주의자들이 읽은 기호는 그 자체로 올바르고 유용하게 제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교정이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교도의 기호는 그 자체로 정신적으로 쓸모없는 것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고 해석을 시도할수록 거짓 신들만 양산해낼 뿐이다. 따라서 이교도의 오류는 바로잡을 수 없다: DDC, Ⅲ.7.11;8.12.

59 DDC, Ⅲ.10.14-25.34.

60 DDC, Ⅲ.10.15.

61 DDC, Ⅲ.10.16.

62 DDC, Ⅲ.27.38.

63 Christoph Schaublin, “De doctrina christiana: A Classic of Western Culture?”, p.49.

64 R. A. Markus, “Communication and Communities in Augustine’s De doctrina christiana”, p.130.

65 DDC, Ⅲ.10.14.

66 David Dawson, “Sign Theory, Allegorical Reading, and the Motions of the Soul in De doctrina christiana”, Edit. by Duane W. H. Arnole & Pamela Bright, A Classic of Western Culture(Notre Dame: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1995), p.124.

67 DDC, Ⅰ.36.40-41.

68 DDC, Ⅰ.39.43.

69 George Howie, Educational theory and practice in St. Augustine, p.216.

70 R. A. Markus, “Communication and Communities in Augustine’s De doctrina christiana”, p.103.

71 DDC, Ⅲ.10.16.

72 DDC, Ⅲ.10.15.

73 아우구스티누스가 볼 때, 로마서 2장에서 죄인의 삶을 책망하는 바울의 진술이 이러한 예에 속한다: DDC, Ⅲ.11.17.

74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닦아 드린 여인이 보통 우리가 혐오하는 잔치에서 사치스럽고 방탕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행위를 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DDC, Ⅲ.12.18.

75 “주님께서 누룩을 두고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에게는 비난하시는 데 사용하시지만, 천국을 설명하실 때에는 긍정적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DDC, Ⅲ.25.35.

76 DDC, Ⅲ.27.38.

77 DDC, Ⅲ.26.37.

78 George Howie, Educational theory and practice in St. Augustine, p.216.

79 DDC, Ⅲ.29.40.

80 DDC, Ⅰ.1.1.

81 DDC, Ⅲ.27.38.

82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교사론』과 마찬가지로 언어적 한계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언어적 한계를 회의론의 근거가 아니라 교사 훈련의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 교양』은 『교사론』과 구분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교사론에서 인간 교사의 역할에 대한 새 관점」을 참고하라: 신경수, 「아우구스티누스 교사론에서 인간 교사의 역할에 대한 새 관점」, 『인문학연구』제41호(인문학연구원, 2019).

83 DDC, Ⅱ.11.16.

84 DDC, Ⅱ.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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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경수, 「『그리스도교 교양』Ⅳ권에 나타난 교사의 윤리」, 『종교교육학연구』61집(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19),「아우구스티누스 교사론에서 인간교사의 역할에 대한 새 관점」, 『인문학연구』41권(서울: 인문학연구원, 2019), 「아우구스티누스 자유교육의 인식론적 근거」, 『철학논총』89집(대구: 새한철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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