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nonia Educational Ministry as a Pertinent Corrective to Disintegration and Fragmentation Inherent in the Korean Church

Research
이 규민  Kyoomin Lee1*

Abstract

Korean society in 2020 is facing a new turning point with the unprecedented COVID-19 crisis. In the future, Korean society is expected to gradually spread its postmodern characteristics across all areas. Pursuing collectivity and uniformity as in the past will make it a return to past-oriented pre-modernism. On the other hand, if one chooses either individuality or plurality, it will fall into another extreme of individualism and relativism. These two extremes of pre-modern uniformism and postmodern pluralism can never be an alternative to Korean society. Korean society in the 21st century needs a more comprehensive third alternative that respects the importance of individuals along with communities.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theological and educational inquiry towards this third alternative. For this third alternative, this study attempted to reflect on the followings. First, reflections on the heritage of the Korean Church that enabled its explosive growth; second, reflections on pastoral expertise and identity distinct from ordinary professionals; third, typological consider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ecular culture and Christianity; fourth, reflections on the characteristics and methodologies of Christian education, which are the theoretical foundation of the educational ministry; fifth, analytical reflection on major problems that hinder educational ministry of the Korean Church; Finally, this inquiry was completed by presenting a ‘Koinonia Educational Model’ as an alternative for the problem of disintegrationa and fragmentation residing in the Korean Church.

Keyword



Ⅰ. 들어가는 말

21세기 세 번째 십 년기를 맞은 한국사회는 미증유의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국가적, 교회적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국동란 이후 한국사회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외침에 익숙하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를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뭉침과 흩어짐, 모임과 나눔은 인간의 집단성과 개별성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전통사회는 유교적 ‘집단’과 ‘연합’에 익숙해왔지만 이제 탈근대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사회는 ‘개별’과 ‘분리’를 향한 움직임이 점점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집단과 연합은 구심점과 단결력을 강화해주지만 원심력과 창의적 개방성을 저해한다. 한편 개별과 분리는 원심력과 창의적 개방성을 제고해줄 수 있지만 구심점과 단결력을 약화시킨다.1 구심점과 원심력, 단결력과 개방성을 동시에 제고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러한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집단주의나 개인주의의 극단을 넘어 몰트만이 언급한 “집단적 개인주의”(collective individualism), “개인적 집단주의”(individual collectivism)라는 창조적 제 3지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2 이러한 제 3지대는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논의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교회 성장을 가능케 한 고유의 전통 유산이 무엇인가 살펴본다. 둘째, 한국사회를 위한 목회자의 전문성 및 정체성을 살펴본다. 셋째, 문화와 종교, 문화와 기독교 사이의 관계성 및 유형에 대해 살펴본다. 넷째, 교육목회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기독교교육의 특성과 방법론을 고찰한다. 다섯째, 교육목회를 저해하는 분리-단절의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 분석적으로 조명해본다. 마지막으로 분리-단절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서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를 제시함으로써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 한국교회 전통과 영적 유산: 관계적 조망

외국인 교수, 목회자, 신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이다. 2천 년 교회 역사상 한국교회와 같은 폭발적 성장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러한 성장에는 그 속에 반드시 어떤 요인이나 원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과 유사한 정치적 억압, 동족상쟁, 절대 빈곤, 3세계적 환경에 놓였던 많은 나라들 가운데 유독 한국만이 엄청난 교회성장과 더불어 세계에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타 국가들과 구별되는 한국 특유의 중요한 요인은 무엇보다 영적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영적 특성은 “The Church of 3 P’s”로 표현할 수 있다. “The Church of Prayer, Passion, and Perseverance”라는 영적 유산이 한국교회를 세계가 주목하는 교회로 만든 것이다.3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고, 열정 있는 교회였고,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인내를 지키는 교회였다. 기도의 눈물이 있었고 열정의 땀방울이 있었고 순교의 피 흘림이 있는 교회였다. 구한말에는 서양종교, 일제 치하에는 애국 종교, 공산 치하에는 유일신 종교라고 탄압받았다, 독재 정권하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위해 많은 고난을 이겨낸 교회가 한국교회이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기도, 열정, 견인의 영성을 갖게 된 것은 1903년 원산대부흥과 1907년 평양대부흥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디 선교사의 진솔한 죄고백, 성경공부와 기도운동 그리고 길선주 목사의 죄고백으로 점화된 평양대부흥은 “진정한 한국교회의 시작”을 가능케 한 역사적, 영적 사건이었다는 것이 교회사가 민경배의 분석이다.4 이를 통해 한반도 전역에 말씀, 회개, 기도운동이 확산되고 중국, 만주, 인도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영적 토양 속에서 한반도 교회의 전국적 연계망이 형성되었다. 그 위에 주님 사랑, 나라 사랑의 열정이 이어져 1919년 삼일 만세운동에 교회가 앞장서게 되었고, 조선인 전체의 1.3% 내외밖에 되지 않을 만큼 미약한 숫자에도 불구하고, 삼일운동 참가자의 20% 이상이 기독교인이었고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을 기독교인 지도자가 맡을 정도로 한국교회의 나라 사랑 열정은 괄목할 만하였다.5

이에 비해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유산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치열하게 자신과 씨름하고 악한 유혹과 죄의 문제를 놓고 투쟁하는 기도의 골방이 사라지고 있다. 마음을 모아 드리는 합심기도와 통성기도가 열광주의로 매도당하고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본을 보인 금식기도는 유행 지난 구태가 되어가고 있다. 외적 성취에 대한 열정이 강해짐에 비해 전도와 구령을 향한 열정은 점점 식어간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결단도 약해져 가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박해나 순교가 요청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미지수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에, 그것을 단순 논리로 파악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적, 대증적 분석보다는 뿌리적, 근원적 분석을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원이 한국교회 위기의 외적, 배경적 요인이라면 신앙적, 영적 차원은 한국교회 위기의 내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교회의 위기 분석을 교회 내적, 본질적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외적 증상 치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내적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능력 속에 형성되고, 하나님-나-이웃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기에 본 연구는 “영성 및 관계적” 관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게 될 것이다.

3. 한국 사회를 위한 목회자의 전문성 및 정체성

1. 추모공간의 환경과 준거

세계적 명성을 가진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오늘날의 다원주의, 이동성, 세분화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 속에서 사회질서와 구조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기능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떤 전문적 직업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병든 자를 치유하겠다는 선서를 합니다.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법률가들은 법을 해석함으로써 사회체계 속에 필요한 법적 정당성과 기준을 보호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목회자들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예언자, 제사장, 왕 등과 같은 애매한 이미지를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예언자는 프로이드, 융, 막스, 다윈, 아인슈타인처럼 그들의 머리로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진짜 왕은 국회의원, 주지사, 대통령처럼 정치적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은 마가렛 미드와 탈콧 파슨스처럼 사람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사회체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님들께 묻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6

마가렛 미드는 목회자들에게 근원적 질문과 함께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오늘의 목회자들은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전통 기독교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 전문직은 목회자, 법조인, 의료인이었다. 영, 혼, 육의 유기적 복합체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볼 때, 목회자는 영적 차원, 법조인은 정신적 차원, 의료인은 육체적 차원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세 전문직은 자신의 전문성과 고유 영역을 나타내는 경전과 제복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는 성경과 성의를, 법조인은 법전과 법복을, 의료인은 의학서와 가운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미드는 목회자 고유의 전문성과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과거 전문인력이 부족했을 때는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이 훨씬 더 많이 주어졌다. 하지만 전문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인력이 확충되어 감에 따라 목회자가 해왔던 일들이 점점 세분화된 인력의 담당업무로 이관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목회자 고유의 전문성과 정체성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에 기여한다. 이것은 곧 ‘자신’과 ‘환경’이라는 2차원적 세계 속에서의 사역이다. 하지만 목회자는 2차원을 넘어 4차원적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7 목회자도 똑같은 동료 시민임이 틀림없고,‘자신’과 ‘환경’이라는 2차원적 세계에서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도록 요청받는다. 하지만 목회자는 2차원적 세계에 머무르면 안 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죄와 죽음,’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해방과 생명’이라는 실재를 붙들고 살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죄와 죽음’, ‘해방과 생명’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 모두에게 중요한 차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세속화와 무신론은 이 중요한 차원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그 결과 심각한 왜곡, 일탈, 기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불건강, 도덕과 부도덕이 이리저리 섞이고 뒤틀려 교회와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목회자는 2차원이 아닌 4차원적 시각과 비전을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며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 앞(coram Deo)에서, 그리스도 안(en Christo)에서, 성령과 더불어(kata Spiritus) 참된 인간으로서 자신, 가정, 교회, 사회, 세계에 봉사하며, 모범을 보이며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목회자 특유의 전문성이요 정체성인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고유의 정체성과 책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목회자는 자신, 이웃, 사회, 세계와의 관계성을 올바로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근원적’ 관계성이 바로 정립되어야 한다. ‘근원적’ 관계성이란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올바로 회복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제사장, 예언자, 왕의 삼중직을 감당하였다. 제사장적 중보, 예언자적 깨우침, 왕적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신 것이다.8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삶 속에서 이러한 삼중직을 감당할 책임이 있다. 그중에서도 목회자는 누구보다 이 일을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감당하도록 소명 받은 사람들이다. “여러분 목회자들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우리가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목회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목회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2차원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해방과 생명“으로 인도함으로써 온전한 4차원의 실재를 보며 생명의 삶을 살아가도록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전문성과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영적 중보자, 교사, 섬김이입니다.” 여기에서 ‘영적’이란 말은 2차원이 아닌 4차원적 실재라는 뜻이다. 목회자는 ‘자신-환경-죄와 죽음-해방과 생명’이란 4차원 실재 속에서 특유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초월적’ 관계성, 나와 자신과의 관계를 ‘실존적’ 관계성,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대인적’ 관계성, 나와 사회 & 세계와의 관계를 가리켜 ‘사회적’ 관계성이라 부를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원한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며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구원사역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영 위에 “투명하게 기초”(transparently grounded)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임을 키에르케고르는 강조한다. 나와의 실존적 관계성은 사유의 주체로서의 나(I)와 사유의 대상으로서의 나(me) 사이에 괴리와 왜곡 없이 수용, 용납, 일치가 이루어짐으로써 ‘자아통합’(ego integrity)이 이루어진다. 대인적 관계성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에 기초해서 신애(神愛)->자애(自愛)->인애(隣愛)로 확장되어가야 한다. 사회적 관계성에서 말하는 ‘사회’는 특정 대상보다는 시대적, 문화적 환경을 의미한다. 이제 사회적 관계성에 대한 고찰을 문화적 환경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9

4. 문화, 종교, 기독교의 관계성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캐치 프레이즈는 인간 삶에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준다. 책이란 인간의 문화활동을 활자로 담아 표현하는 인간 특유의 창작물이다. 책도 인간 문화의 일환임을 생각할 때 “사람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사람을 만든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인간 삶에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음식 없는 삶은 가능할 수 있어도 문화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이미 음식문화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문화를 통해 구현되고 문화는 인간 삶에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밀접하고 필수불가결한 실재이다.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니버의 명저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에 제시된 유형론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10 니버는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성을 둘 사이의 전치사를 중심으로 5가지 유형으로 제시한다. 그는 기독교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면서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 및 기독교 진리주장을 대변하는 반면, 문화는 각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현실을 담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니버의 유형론은 기독교 전통을 중시하는 ‘기독교교육’과 정치-경제-사회적 장을 중시하는 ‘문화’의 관계성에 대한 통찰을 준다.11

1) 문화에 대립하는 기독교

이 입장은 세속 문화와 기독교, 기독교와 세속문화 사이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분명한 단절이 있음을 강조한다.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 기독교적 전제와 지향점이 세속문화와는 불가공약성, 불연속성을 이루고 있기에 이 둘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가, 문화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터툴리안, 중세 수도원의 종파운동 등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입장 속에는 탈사회적, 신비주의적 경향성이 나타난다. 그 결과 “문화에 대립하는 기독교”는 반문화적이고 현실도피적인 경향성을 나타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피하기 힘든 모순과 불일치가 나타난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세상 문화는 그들을 따라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물과 같고 공기와 같기에 사람은 문화와 함께 문화와 더불어 살아간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음”(요 3:16)을 기억해야 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마 6:10)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크리스천은 문화에 속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문화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며 세상 문화를 활용하되 그 방향과 의미를 하나님 뜻에 따라 변화시켜가야 갈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문화의 기독교

이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문화적 이상을 달성하신 분,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한 모델로 바라본다. 그리스도를 위대한 교육자요 도덕적 모범을 실천한 지도자, 문화의 진정한 완성를 보여준 영웅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문화 정신과 가치를 성실히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와 기독교, 기독교와 문화 속에는 일정 부분 연속성이 들어있고,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는 상통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들은 문화발전과 창달을 위해 헌신한다. 이러한 입장은 에비온주의, 영지주의, 존 로크와 칸트 같은 18세기 기독교 합리주의자, 슐라이어마허나 리츨 같은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을 속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기독교 진리와 당대의 세속문화를 연속성 속에서만 바라보며 과도한 일치와 확장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물론 문화는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삶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한, 문화를 떠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 자신도 당시 중근동 문화와 그레코-로만 문화가 교차되는 시공간 속에서 행동하며 사역을 이루어가셨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분명 문화 속에서 살아가지만 문화에 속한 존재는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와 문화 사이에는 연속성과 함께 불연속성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3) 문화 위에 군림하는 기독교

이 입장은 문화와 기독교, 기독교와 문화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함께 연속성도 있음을 긍정한다. 따라서 ‘문화와 기독교’라는 주제에 대해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공존 및 양자종합의 자세를 견지한다. “문화 위에 군림하는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의 주님인 동시에, 만물의 근본원리 곧 로고스(Logos)이심을 강조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토머스 아퀴나스, 조셉 버틀러 등에게서 이러한 입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문화에 대립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세속문화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인정한다. 또한 “문화의 기독교”와는 달리 세속문화에 결여된 기독교의 초월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는 세속문화와 기독교의 내재적 차원을 거의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속문화와 기독교의 내재적 차원 사이에 연속성만 있지 않고 불연속성도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4) 역설적 관계에 놓인 기독교와 문화

이 입장은 “문화 위에 군림하는 기독교”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문화 위에 군림하는 기독교”가 세속문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고 수용적임에 비해, “역설적 관계에 놓인 기독교와 문화”는 비기독교적, 반기독교적 요소들이 문화 속에 있음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그러나 세속문화 속에 왜곡되고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면서도 인간이 육체를 가진 이상 이러한 문화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없음도 인정한다. 이러한 모습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탄식 속에도 나타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왜곡과 일탈이 있는 세속문화 속에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오염된 세계를 긍휼로 붙들어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자세를 마틴 루터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인 동시에 ‘이세상 나라’ 백성임을 인정하며 “두 왕국 사상”을 제시한다. 하나님 나라는 은혜와 긍휼의 나라인 반면, 이세상 나라는 분노와 통치의 나라이다. 따라서 하나님 백성은 두 나라가 요청하는 의무와 책임을 함께 감당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들이 처한 갈등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입장 속에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일방적 강조로 인해 반율법주의로 치우치거나 세상의 문화적 왜곡을 용인하는 위험도 함께 들어있다.

5) 문화를 변혁해 나가는 기독교

이 입장은 세속문화 속에는 일종의 가능성도 있지만 타락한 인간의 죄성도 함께 있음을 주목한다. 세속문화에는 기독교와 연결될 수 있는 연속성도 있지만 반기독교적 요소, 불연속적 차원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에 대립하는 기독교”처럼 세상과 문화로부터 도피하거나 분리하지 않는다. “역설적 관계에 놓인 기독교와 문화”처럼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보지만, 하나님 구속의 시간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에 앞장선다. 이 입장은 “문화의 기독교”처럼 문화와 기독교를 동일선에 놓지도 않으며, “문화에 군림하는 기독교”처럼 세속문화를 기독교의 내재적 차원과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어거스틴, 칼빈, 웨슬리, 모리스 등에게서 이런 모습이 발견된다. 이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정죄하거나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속문화와 역사 속에서 소금, 빛, 밀알로서 문화와 역사를 변혁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을 역설한다.

리처드 니버는 어느 한 유형을 자신이 선택한 유형으로 특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다섯 유형 중에서 문제점이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은 유일한 유형이 바로 이 “문화를 변혁하는 기독교”라는 유형이다.12 세속문화의 가능성과 함께 제한성을,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가치관 및 세계관의 관점에서 성찰하며, 비판적 수용과 함께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한 변혁을 함께 수행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제 문화를 변혁해 나가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기독교교육학의 특성과 방법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5. 기독교교육학의 특성 및 방법론

기독교교육학은 ‘기독교’와 ‘교육학’의 합성어로서 그 속에 ‘기독교’적 특성과 ‘교육학’의 특성이 함께 들어있다. 기독교적 특성은 신학, 교리, 전통, 역사를 통해 알 수 있고, 교육학적 특성은 교육학,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등의 인문-사회과학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두 축의 특성을 상호 비교해본다면, 후자에 비해 전자가 초월, 불연속, 목적론, 가능성, 변형화를 지향한다면, 후자는 내재, 연속, 인과론, 필연성, 사회화를 지향한다. 두 축이 서로에 대해 가진 위상 및 영향력에 따라, ‘기독교’와 ‘교육학’의 만남의 형태를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13

1) 기독교교육학의 학문적 특성: ‘기독교’와 ‘교육학’의 만남

(1) ‘기독교’의 일방적 우위성

이 입장은 ‘기독교’가 ‘교육학’을 일방적으로 좌우하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이다. 모든 진리 파악 및 실천을 위한 근거, 기준, 자원이 기독교 전통 속에 들어있기에 교육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하는 기능적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은 ‘교육학’에 대한 ‘기독교’의 절대성과 배타성만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독교교육학은 예배, 설교, 성경, 교리를 통해 나타난 기독교적 진리를 단순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만 치중하게 된다. 이들의 입장은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에서 온 것으로 보고 구원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바른 교리(ortho-doxy)를 알고 믿는 것이다.

(2) ‘교육학’의 일방적 우위성

이 입장은 ‘교육학’이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이끄는 매우 진보적 입장이다. 교육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절대적 가치가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교육내용 속에 도덕적, 윤리적 문제만 없다면 얼마든지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 낙관적 견해이다. 교육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 중심의 연구, 통찰, 깨달음이 중요하며, 이러한 연구를 통해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향만 추구하게 되면 기독교보다는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의 빛과 학문적 성찰을 통해 그들의 이상을 이루려 하는 인본주의의 한계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죄를 무지와 이기심으로 인한 것으로 규정하고, 바른 실천(ortho-praxy)을 통해 죄로부터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낙관론에 빠질 수 있다.

(3) ‘기독교’와 ‘교육학’의 상호보완 및 상호역동성

이 입장은 ‘기독교’에 의해 ‘교육학’의 통전성이 침해되거나 ‘교육학’에 의해 ‘기독교’의 통전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서로의 고유성과 통전성을 존중하면서, 학제 간 연구의 토대 위에서 상호교정, 상호보완, 상호비옥화를 통해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 탐구를 향한 통섭적 연구를 지향하는 입장이다. 아더 홈스(Arthur Holmes)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다』(All Truch is God’s Truth)란 저서에서 강조한 것처럼,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는 성경말씀은 물론이고 피조세계 및 우주 속에 편만해 있다.14 그것이 참된 진리라면 신학뿐 아니라 교육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 모든 분야에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있음을 인정한다. 기독교 진리 주장(truth claim)의 통전성, 입체성, 편만성을 수용하고 그것이 왜곡된 학문이 아닌 참된 학문이라면 모든 학문과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를 보다 넓고 깊게 알아가는 것을 추구하며, 신앙의 토대 위에서 학문적 성찰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단절 및 그로부터 파생된 모든 관계의 왜곡과 일탈이기에,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의 토대 위에서 대신적(對神的), 대내적(intra-personal), 대인적(inter-personal), 대사회적, 대역사적 차원의 전인적 관계 회복을 통해 통전적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입장은 바른 교리(ortho-doxy)뿐 아니라 바른 태도(ortho-pathy), 바른 실천(ortho-praxy)을 그 속에 함께 포괄한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 믿는 것, 실천하는 것이 하나로 만나는 통전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전적 진리를 추구하는 교육을 가리켜 ‘통전적 기독교교육’(Holistic Christian Education)이라 칭하기로 하자. 통전적 기독교교육을 수행하는 방법론적 토대를 ‘신-인 관계’(God-human relationship) 및 기독교와 교육학 관계의 원형이라 그리스도의 양성론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통전적 기독교교육 방법론에 대해 성찰해보도록 하자.15

2) 통전적 기독교교육 방법론

통전적 기독교교육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데보라 헌싱어의 “칼케돈 모형”(Chalcedonian Pattern)16 및 폴라니와 로더의 “뫼비우스띠 모델”(Möbius Band Model)과 맥을 같이 한다.17 헌싱어는 신성과 인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 혼합되지 않고 공존하는 것처럼, 기독교와 교육학이 상호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신성과 인성이 신비적 연합을 이룬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와 ‘교육’ 역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처럼 상호공존과 연합을 통해 기독교 진리에 입각한 바른 신앙과 바른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이루어가려는 것이다.18 이러한 관점에서 헌싱어의 “칼케돈 유형”과 폴라니 및 로더의 “뫼비우스띠 모델”과 통전적 기독교교육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그 지향하는 바와 실천 방법론이 서로 상통한다. 로더는 헌싱어 이전부터 마이클 폴라니의 “한계적 조율”(marginal control)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에 대해 한계적 조율을 수행함을 강조하였다. 로더는 실천신학의 모든 분야에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방법론”(Christological methodology)이 적용되어야 함을 역설한다.19

근원적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기독교교육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존재방식과 사역방식”을 토대로 한 통전성에 기초한다. 그리스도의 존재방식과 사역방식은 칼케돈 신조에 명시된 것처럼, 신성과 인성이라는 “양극의 관계적 일치”(bipolar relational unity)인 동시에, 신성이 보여주는 인성에 대한 한계적 조율성을 보여준다. ‘교육’에 비해 초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신성 축에 상응한다면, 초월성보다 내재성을 강조하는 ‘교육’은 그리스도의 인성 축에 상응한다. 이러한 ‘신성과 기독교’는 뫼비우스띠 모델의 상단에, ‘인성과 교육’은 하단에 놓이게 된다. 폴라니와 로더의 통찰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20 즉, 뫼비우스 모델의 ‘상단’은 하단의 방향, 목적, 의미를 제시해주고, ‘하단’은 상단의 그러한 차원을 추진, 보완, 실현해준다. 따라서 ‘기독교’는 ‘교육’의 방향, 목적, 의미를 밝혀주게 되고, ‘교육’은 그러한 방향, 목적, 의미를 추진, 보완, 실현해 나가게 되는 뫼비우스 모델은 통전적 기독교교육의 방법론적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통전적 기독교교육의 관점에서 한국교회 교육목회에 나타나는 분리와 단절의 문제를 분석, 진단, 조명해보기로 하자.

6. 교육목회 정의 및 분리-단절의 문제

교육목회 커리큘럼』의 저자 해리스 또한 교육목회의 범주를 이렇게 제시한다.

목회적 소명은 그 단어 자체에 암시되듯이, 특별한 삶의 방식에로의 부름이요, 특별한 삶의 방식에 대한 요구이다. 이러한 특수성은 ‘목회적’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계성을 함축하고, 아울러 기독교적인 사역활동에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 지구를 돌보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교회 안과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까지 하나님과의 관계와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21

해리스의 주장은 교육목회는 교회 자체만을 위한 교회 내적 삶으로 제한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의 내적 삶은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 존재의 기반이요 교회 밖을 향한 생명적 사역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목회는 자기 자신의 생존이나 자기만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목회는 사회와 세계를 위한 섬김과 봉사, 구령사업과 사회선교를 위한 통로요 견인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행 1:8)이 될 것을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는 길이다.

현재 한국교회 교육목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다음 세대와 청년들의 급감, 문화지체 현상의 누적, 교사 확충의 어려움, 사회적 신뢰 상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목회를 향한 관심과 에너지가 급속히 저하될 뿐 아니라 교육목회 내에 많은 일탈적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교육목회에 나타나는 중요한 차원의 분리와 단절의 문제이다. 신앙과 삶, 교회 안과 교회 밖, 현세대와 다음 세대, 본당과 교육관, 각 부서 간의 분리와 단절은 교육목회를 저해하고 그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교육목회 및 교육목회 커리큘럼에 대해 일별한 후 교육목회 내에 존재하는 중요한 분리와 단절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교육과 목회를 포괄하는 교육목회

교육과 목회, 목회와 교육은 원천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교육목회 및 교육선교를 명하는 그리스도의 위임명령은 “제자 삼으라,” “세례 주라,” “가르치라”로 요약된다(마28:19-20). 이는 모두 전도훈련, 제자훈련, 세례교육, 신앙교육을 의미하기에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른 교회의 내적 사역은 철저히 교육 및 교육목회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초대교회의 모습은 “가르침,” “말씀,” “교제,” “예배” “봉사”로 나타난다. 이것은 마리아 해리스가 말하는 교회의 존재 이유 및 역할과 정확히 일치한다. 마리아 해리스는 진정한 기독교교육 및 교육목회는 단순한 디다케(가르침)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빚어가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참된 교육목회는 디다케(가르침) 외에 케리그마(말씀선포), 레이투르기아(예배), 코이노니아(친교), 디아코니아(봉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커리큘럼이 있는 목회가 활성화된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 하나님의 친백성을 부르시고(called-out), 훈련시키시고(called-up),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called-into).22 훈련 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에 의해 역으로 오염 내지 변질되기 쉽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적, 교리적 훈련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참된 변화를 위해서는 입체적, 총체적 커리큘럼이 요청된다. 입체적, 총체적 커리큘럼은 마치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빚어나가는 다섯 손가락과도 같다. ‘하나님 사랑’에 관한 교육을 한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하나님 사랑’이란 주제를 성경공부나 교리공부만으로 가르치는 것(didache)은 지식훈련 내지 머리 훈련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하나님 사랑을 주제로 한 설교(kerygma)-기도-찬송-예배(leiturgia)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고 마음에 새겨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성도 간의 친교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나눔으로써(협의의 koinonia) 사랑 속에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느끼고 나누고 경험한 사랑을 사회적 약자 및 어려움을 당한 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실천함으로써(diakonia) ‘하나님 사랑’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처럼 머리, 가슴, 몸과 영, 혼, 육이 입체적으로 교육과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야다’(yada)와 ‘기노스코’(ginosko)가 일어나는 총체적 신앙 훈련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목회인 것이다.

2) 교육목회의 핵심과제 및 분리-단절의 극복

교육목회는 단순한 주일학교, 교회학교, 디다케가 아니다. 교육목회 속에 이러한 실천적 요소가 포함되는 것일 뿐, 교육목회는 보다 포괄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다. 교육목회가 올바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연성, 통합성, 일치성을 필요로 한다. 몸이 유기적이지 못하고 제각각 흩어져 있거나 분리되어 있으면 그것은 건강성과 생명력을 급속히 잃고 만다. 한국교회와 교육목회가 건강하지 못하고 역동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교회 및 교육목회에 나타나는 단절과 분리야말로 한국교회와 교육목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한국교회와 교육목회에 나타나는 분리와 단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23

(1) 신앙과 삶의 분리

과거에는 교회가 사회를 염려하고 걱정하였다면 어느 때부터인가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것으로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말하는 신앙과 삶 사이에 심각한 분리와 괴리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리와 괴리 극복 없이는 전도, 구령, 교회 성장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라도 빨리 올바른 교육목회를 통해 바른 신앙, 바른 실천, 바른 관계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와 교육의 생명력이 다시금 살아날 수 있게 될 것이다.

(2) 교회 안과 교회 밖의 분리

한국교회는 많은 경우에 편향된 보수와 편향된 진보라는 두 그룹으로 대별된다. 보수는 구령과 전도를 강조하는 반면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책무에 대한 강조가 부족한 경향이 있다. 한편 진보는 사회정의와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대신 구령과 전도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한다면, 보수와 진보는 그 몸의 균형을 잡는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에 해당한다. 이 두 날개가 몸의 전체적 균형을 잡아주기에,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기 위해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적대시하기보다는 서로를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 교회 내적 돌봄과 생명력을 갖춘 보수는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책무를 감당해야 하고, 교회 외적 사역과 참여에 관심이 있는 진보는 자신과 교회, 이웃의 복음적 생명력과 구령의 열정에 눈떠야 한다. 이처럼 교회 안과 교회 밖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고 온전한 사역을 위한 공동체로 통합되어야 한다.

(3) 현세대와 다음세대의 분리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나라로 자타가 공인한다. 속도가 빠른 것은 생산성 및 디지털 산업의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하지만 빠른 변화로 인해 세대 간의 간극과 단절이 과거 어느 때보다 그리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교회는 사회에 비해 문화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아동, 청소년, 청년 등 다음세대와는 문화정서적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녀 사랑이 특심한 한국의 부모는 자녀의 정서와 취향을 존중해주고 맞춰주고자 노력한다. 일반 사회는 물론이고 크리스천 가정과 비교해보아도, 교회는 다음세대의 정서와 취향에 대해 그다지 수용적이거나 개방적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21세기 한국교회를 향한 다음세대의 반응을 댄 킴볼(Dan Kimball)은 이렇게 표현한다. “They like Jesus but not the Church.”24 교회 내 다음세대 위기와 교회학교의 급감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어른에게 맞추는 것 이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신 예수님의 ‘성육신’과(빌 2:5-11),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기를 서슴지 않은 사도 바울의 ‘눈높이’ 목회는(고전 9:22) 오늘의 사역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본당과 교육관의 분리

한국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가정위기를 높일 수 있는 역설성을 지니고 있다. 교회에 도착하는 즉시 부모는 본당으로 자녀들은 교육관으로 떨어지게 된다. 예배를 마친 후에도 아빠는 남선교회로, 엄마는 여전도회로, 형제자매는 각부서 별 활동으로 흩어진다. 이렇게 되면 가족 간의 결별은 물론이고, 설교말씀과 성경공부 주제도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영적 구심점도 찾기가 어렵다. 한국처럼 바쁜 사회에서 주중에 각자가 바쁜 삶을 살다가 모처럼 맞은 주말에도 서로 흩어져 서로 다른 부서 활동을 하게 되면, 가족으로서의 친교와 영적 구심점을 이루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본당과 교육과의 분리를 극복할 수 있는 창의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녀와 함께 드리는 예배, 전교인 친교 활동, 전교인 체험학습, 전교인 수련회 등을 활용함으로써 부모와 자녀, 세대 간 연합의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성년그룹은 본당을 중심으로, 미성년그룹은 교육관을 중심으로 모든 예배와 활동이 이루어지다보니 다음 세대가 볼 때 본당이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세대 간 단절과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어 활동무대를 교육관에서 본당으로 옮기는 과정 중에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이러한 이질감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5) 교육부서 간의 분리

본당과 교육관만 분리된 것이 아니다. 교육부서 간에도 원활한 소통과 친교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각부서 별로 예배, 성경공부, 활동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에 각 부서간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친교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부족하다. 오히려 부서들 간에 묘한 비교의식과 불건강한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것은 하나님백성 공동체 의식 형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선배와 후배, 부서와 부서 간 협력과 연대적 노력을 통해 공동체 정신도 배우고 사회성과 창의성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외에 현실적 측면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교육부서들 간의 친교와 교류를 통해 직전 부서에서 다음 부서로의 진급 과정에서 낙오되거나 탈락하는 비율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육공동체, 예배공동체, 전 백성공동체로서의 친교와 연합 활동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분리와 단절을 극복하는 것은 한국교회 및 교육목회의 변화를 위한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올바른 교육목회에 걸림돌이 되는 다양한 분리와 단절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분리와 단절 극복을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서 연구자는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7. 통전적 기독교교육에 입각한 코이노니아 교육목회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음을 증언한다. 그렇다면 인간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human community)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성(divine community)을 그 속에 회복해나갈 때 참된 성장이 일어난다. 하나님 공동체 즉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는 단절, 억압, 불일치가 아닌 연합, 해방, 일치가 나타난다.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는 진정한 친교로서의 역동적 코이노니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역동화하는 교육목회를 가리켜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근원적 관계성 회복을 기초로 자신-교회-이웃-사회-세계 속에 코이노니아의 역동성을 심화, 확장시켜 나감으로써 하나님나라 확장을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코이노니아 교육목회 모델을 캠벨 와이코프의 커리큘럼 구조에 맞춰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구성해보고자 한다.25

1) 교육목적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만남의 토대 위에서, 변형화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개인 및 공동체가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교제, 상호보완, 상호해방을 구현해나가도록 하는 교육목회”를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그 형상이 왜곡되었기에 다양한 형태의 분리와 단절이 삶의 모든 곳에 나타난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이러한 왜곡, 분리, 단절을 치유하고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구원 계획에 동참하는 것을 지향한다. 즉 개인, 가정, 교회, 사회, 세계 속에 코이노니아적 생명력과 역동성이 나타나게 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2) 교육내용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닮기 위해 내가/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정, 교회, 학교, 사회에서 개인적, 공동적으로 하나님 통치가 확장되도록 하기 위해 지식/태도/실천 영역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3) 교육방법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사회화와 변형화의 교육방법을 동시에 그리고 순차적으로 수행해나간다. 사회화는 다음과 같은 일반교육을 기독교교육 속에 분별력 있게 차용하고 응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교육심리학, 발달심리학, 집단역학, 교육사회학, 커리큘럼이론, 교육철학이론 등, 교육학 등에서 발견된 다양한 전문 지식과 이론들을 활용함으로써 학습자의 바람직한 지식, 태도, 실천을 위한 ‘형성적 노력’(formational effort)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일반교육 내용 및 방법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화’ 교육은 기본적으로 ‘자아-환경’이라는 2차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편 ‘변형화’는 이처럼 제한되고 좁아진 2차원적 구도를 4차원적 구도로 확장시킨다. 인간이 흔히 경험하는 2차원적 구도는 4차원적 실재를 인간중심적 시각으로 축소시켜 놓은 것이다. ‘인간-환경’이라는 2차원적 구도에 결핍된 두 차원 즉, ‘죄와 죽음-해방과 생명’이라는 4차원적 실재를 회복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도록 돕는 것이 변형화교육인 것이다. 변형화교육은 ‘삼위일체 하나님-교사-학습자’라는 역동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것처럼 의지하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교육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변형화교육은 2차원을 4차원으로, 인간주권을 하나님 주권으로, 행위중심을 존재중심으로 확장시키는 ‘변형적 역동성’(transformational dynamics) 속에서 교육을 전개해나간다.

일반적으로 사회화교육은 일반교육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방식임에 비해, 변형화교육은 실존적, 고백적, 성령중심적 현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회화교육은 인간의 이성, 내재성, 연속성, 예측성 중심의 교육임에 비해, 변형화교육은 하나님의 계시성, 초월성, 불연속성, 불가예측성 중심의 교육인 것이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이러한 사회화와 변형화를 통전적 시각에서 함께 활용한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교육과 목회의 궁극적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믿고 고백한다. 따라서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가장 성경적이고 온전한 교육방법으로서 ‘성육신적’ 교육 방법론 또는 ‘그리스도적 교육방법론’을 취하고자 한다. 즉 사회화교육과 변형화교육이 십자가의 두 축처럼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수평목처럼 내재적, 이성적 차원의 교육과 십자가의 수직목처럼 초월적, 계시적 차원의 교육을 단속적(斷續的)으로 교차시킴으로써 온전한 십자가 신학의 토대 위에서 코이노니아 교육을 수행하고자 한다. 수평목과 수직목의 교차라는 2차원적 단면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수평과 수직의 교차점에 ‘신기한 고리’(strange loop) 즉 ‘뫼비우스 역동성’(Möbius dynamics)이 발생한다.26 뫼비우스 역동성이란 수직과 수평이 교차할 때 이 두 축이 마치 ‘뫼비우스띠’처럼 놀라운 입체적 연합, 변형적 연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수직은 수평이 될 수 없고 수평은 수직이 될 수 없는데, 뫼비우스적 연합은 수직은 수평으로 수평은 수직으로의 변형적 연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수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수평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대변한다.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에 참여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참여하게 되기에 십자가는 신비적 연합의 영적 아이콘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수제자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고 한 고백이 눈앞에서 성취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실제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칼케돈 공의회는 베드로의 이러한 고백을 그리스도론으로서 교리적으로 확정해주었을 뿐이다.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구세주요 메시아”로 섬길 수 있도록 확정해 준 것이다.

4) 교육주체 및 대상

일반교육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교사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의 주체는 교사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학습자를 함께 포함한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인간의 원형이 창조주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 공동체의 원형이 삼위일체 하나님 공동체임을 믿고 고백하며 교수-학습 공동체로 빚어져 나가는 역동적 과정이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의 근본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며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빚어나가는 ‘하나님의 교육’(Educatio Dei)인 것이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에 있어서 교사는 ‘하나님의 교육’을 위한 통로(channel), 안내자(guide), 촉진자(facilitator)이다. ‘사회화’를 통한 형성(formation) 및 ‘변형화’(transformation)를 통한 변형, 이 둘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성육신적 코이노니아’를 통해 재형성(re-formation)이 일어나도록 안내하고 촉진하는 주체가 교사인 것이다. 학생은 교사의 이러한 안내, 촉진을 수동적으로 구경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참여, 응답, 결단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하게 된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학습자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은행저축식” 교육을 지양한다.27 이런 교육에서는 상호성, 보완성, 역동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는 하나님-교사-학생 간의 인격적 만남, 참여, 변화를 지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교사-학생 간의 참된 코이노니아가 일어나고 이러한 코이노니아는 개인, 공동체, 교회, 사회, 세계를 변화시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가게 될 것이다.

5) 교육시기 및 장소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의 교육시기는 기본적으로 두 차원의 시간을 함께 존중한다. 하나는 양적 시간, 인간의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chronos)요 또 하나는 질적 시간, 하나님의 시간으로서의 카이로스(kairos)이다. 크로노스가 일반교육에서 말하는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신적 계시와 변화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발달의 전 과정과 사회적 시간에 집중하는 반면,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섭리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깨달음, 통찰, 각성, 회심 등의 역동적 변화에 집중한다. 이것은 사회화와 변형화의 양대 기둥을 함께 아우르며 오토 볼노브(Otto Bollnow)의 ‘단속적’(斷續的) 방법, 즉 연속성과 함께 불연속성, 불연속성과 함께 연속성을 품고자 하는 것이다.28

코이노니아 교육목회의 가장 중요한 장소는 가정과 교회이다.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두 기관이 구약 창세기의 가정과 신약 마태복음에 나오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축소된 교회라면 교회는 확대된 가정이다. 가정에서 육적인 생명이 잉태, 출산, 양육된다면, 교회에서는 영적 생명이 잉태, 출산, 양육된다. 가정과 교회, 교회와 가정은 유기적 관련 속에서 개인 및 공동체의 영, 혼, 육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변화와 변형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와 변형이 가정, 교회, 학교, 사회, 세계로 확장되도록 그 생명력과 확산력을 가정과 교회의 시너지를 통해 공급받게 될 것이다.

8. 나가는 말

2020년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일종의 위기와 혼란 속에 빠져 있다.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함께 뒤섞여 혼재하며 서로 간의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제시하는 거시구조를 보면 구심점-정체성-전체성이라는 축과 원심력-개방성-개별성이라는 축이 상호 수렴 내지 관계형성을 하지 못한 채, 서로 분리, 단절됨으로써 많은 왜곡과 일탈을 보이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이제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러한 분리와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 관계성을 발견하고, 한국교회와 교육목회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통전적’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근원적 관계성을 그리스도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성,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 관계성에서 발견하였다. 이러한 근원적 관계성의 관점에서 목회자의 전문성과 정체성,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성, 기독교교육학의 특성과 방법론을 고찰해보았다. 이러한 근원적 관계성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 믿는 것, 그러한 앎과 믿음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통전적’ 진리의 추구이며, 통전적 진리를 추구하는 교육을 가리켜 ‘통전적 기독교교육’(Holistic Christian Education)이라 명명하였다.

통전적 기독교교육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칼케돈 모형’, ‘뫼비우스띠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균형잡힌 교육목회 수행을 위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학문적, 이론적 성찰의 토대 위에서, 교육목회의 핵심과제로서 분리 및 단절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모든 이론적, 실천적 성찰의 열매로서 ‘코이노니아 교육목회’(Koinonia Educational Ministry)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통전적 관계성 회복과 코이노니아 교육목회 모델에 관한 학문적 연구 및 현장에서의 지혜로운 실천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장차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요약

2020년의 한국사회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향후 한국사회는 근대를 지나 탈근대적 특성이 점차 전 영역에 걸쳐 확산되어 갈 것이 예상된다. 과거처럼 집단성과 획일성을 추구하면 그것은 과거지향적 전근대주의로의 회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개별성과 다원성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개인주의, 상대주의라는 또 다른 극단에 빠지고 말 것이다. 전근대적 획일주의나 탈근대적 상대주의라는 양 극단은 결코 한국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21세기 한국사회는 개인과 함께 공동체, 공동체와 함께 개인의 중요성을 존중하는 보다 포괄적인 제 3의 대안을 필요로 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제 3의 대안을 향한 신학적, 기독교교육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이러한 제 3의 대안적 방향설정을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성찰을 시도하였다. 첫째,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을 가능케 했던 한국교회 특유의 유산에 대한 성찰; 둘째, 일반 전문인과 구별되는 목회자만의 전문성 및 정체성에 대한 성찰; 셋째, 세속문화와 기독교의 관계성에 대한 유형론적 고찰; 넷째, 교육목회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기독교교육의 특성 및 방법론에 대한 성찰; 다섯째, 올바른 목회와 교육에 장애가 되는 주요 문제들에 대한 분석적 성찰; 여섯째,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분리와 단절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코이노니아 교육목회’를 제시함으로써 논의를 마무리하였다.

주제어 : 개인주의, 상대주의, 한국교회, 통전적 관계성, 교육목회, 코이노니아 교육목회

Footnotes

1 이규민, 『포스트모던 시대의 통전적 기독교교육』(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5), 366-369.

2 Jürgen Moltmann, The Trinity and the Kindom, trans. by Margaret Kohl(New York: Harper & Row, 1981), 199-200.

3 Kyoomin Lee, Koinonia(Ann Arbor, MI: A Bell & Howard, 1996), 14-16.

4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서울: 한국기독교출판사, 1989), 250-252.

5 이만열, 『한국기독교 문화운동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2), 238-250; http://www. 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1(2020.04.23)

6 James Loder, Educational Ministry in the Logic of the Sprit(Eugene, OR: Cascade Books, 2018), 75.

7 James Loder, The Transforming Moment(Colorado Springs, CO: Helmers & Howard, 1989), 67-92.

8 Robert Greenleaf, Servant Leadership: A Journey into the Nature of Legitimate Power and Greatness Anniversary(Mahwah, NJ: Paulist Press, 2002)

9 이규민, “기독교교육과 문화: 인간성취로서의 문화와 기독교교육의 원리,” 『기독교교육개론』(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364f.

10 Richard Niebuhr, Christ and Culture(New York: Harper & Row, 1975)

11 이규민, “기독교교육과 문화: 인간성취로서의 문화와 기독교교육의 원리,” 『기독교교육개론』(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364f.

12 Lonnie Kliever, Richard Niebuhr(Waco, TX: Word Books Pubs, 1977), 46f.

13 James Loder, Educational Ministry in the Logic of the Spirit, 이규민 역, 『통전적 구원을 위한 기독교교육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0), 55-94.

14 Arthur Holmes, All Truth is God’s Truth, 서원모 역,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다』(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1)

15 여기에서 사용하는 ‘통전’의 용어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 용어는 ‘거느릴 통(統)’과 ‘온전할 전(全)’이 결합된 것으로서 wholeness와 integrity가 하나로 합쳐진 ‘wholistic integrity’ 또는 ‘integrative wholeness’란 의미를 그 속에 지니고 있다. 통전적 기독교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신비적 결합, 즉 성육신적 그리스도론의 토대 위에서 ‘기독교와 ‘교육’, ‘신앙과 학문’이 칼케돈적 모형과 뫼비우스띠 모델처럼 유기적 통합과 상호보완적 만남을 추구한다. 하지만 신성이 인성에 대해 ‘한계적 조율’(marginal control)을 가진 것처럼,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교육과 교육학’에 대해 ‘한계적 조율’을 해나가게 된다. 이규민, 『포스트모던 시대의 통전적 기독교교육』, 12-14.

16 Deborah Hunsinger, “Becoming Bilingual”(New York Union Theological Seminary, Ph.D. Dissertation(1993).

17 James Loder, The Knight’s Move, 이규민 역, 『성령의 관계적 논리와 기독교교육 인식론』, 98-102.

18 헌싱어는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로서 칼케돈 신조에서 그녀의 모델을 이끌어낸다. 칼케돈 신조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분리나 우열 없이 상호공존과 상호보완의 관계를 이루되, 신성이 인성에 대해 일종의 우선성(precedence)를 지니고 있음에 착안한다. 즉 인간이 신이 된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이 된 것이라는 점에서 신성이 인성에 대해 논리적 우선성(logical precedence)이 있다는 것이다. 헌싱어는 기독교상담에서 신학과 상담학은 상호공존과 상호보완의 관계를 유지하되 신학이 상담학에 대해 칼케돈 방식의 우선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Deborah Hunsinger, “Becoming Bilingual,” 69-115.

19 James Loder, The Knight’s Move, 82-7, 142-5, 294-300.

20 James Loder, The Knight’s Move, 98-102.

21 Maria Harris, Fashion Me a People, 고용수 역, 『교육목회 커리큘럼』(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89), 28.

22 은준관, 『실천적 교회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475f.

23 한국교회 속에 나타나는 분리의 이슈는 다음의 자료에 기본 사상이 들어 있다. 이규민, 『포스트모던 시대의 통전적 기독교교육』, 318f.

24 Dan Kimball, “They Like Jesus but Not the Church.” https://www.christiantoday. co.kr/news/206471(2020.04.03.).

25 Campbell Wyckoff, Theory and Design of Christian Education Curriculum(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1).

26 James Loder, The Knight’s Move, 이규민 역, 『성령의 관계적 논리와 기독교교육 인식론』, 89f.

27 Paulo 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trans. by Myra Bergman Ramos(New York: Seabury Press, 1970).

28 Otto Bollnow, Existenzphilosophie und Padagogik, 윤재흥 역, 『실존철학과 교육학: 비연속적 교육형식의 모색』(서울: 학지사, 2008), 15.

References

1 고용수. 『하나님나라와 교육목회』.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9. 

2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한국기독교출판사, 1989. 

3 은준관. 『실천적 교회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4 이만열. 『한국기독교 문화운동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2 

5 이규민. 『포스트모던 시대의 통전적 기독교교육』.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5. 「기독교교육과 문화: 인간성취로서의 문화와 기독교교육의 원리」 『기독교교육개론』.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탈근대화 시대의 기독교교육 과제 설정을 위한 신학적 고찰」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시대의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6 이진우 편.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이해』. 서울: 서광사, 1993.  

7 정정호 외 편. 『포스트모더니즘의 쟁점』. 서울: 도서출판 터, 1991. 

8 Boys, Mary. Education for Citizenship and Discipleship. New York: The Pilgrim Press, 1989. 

9 Calvin, John.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ans. by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1. Vol. IV.  

10 Eisner, Elliott. The Educational Imagination. Upper Saddle River, NJ: Prentice Hall, 2002. 

11 Freire, Paulo. Pedagogy of the Oppressed, trans. by Myra Bergman Ramos. New York: Seabury Press, 1970. 

12 Greenleaf, Robert. Servant Leadership: A Journey into the Nature of Legitimate Power and Greatness Anniversary. Mahwah, NJ: Paulist Press, 2002.  

13  Kliever, Lonnie. Richard Niebuhr. Waco, TX: Word Books Pubs, 1977. 

14 Lee, Kyoomin. Koinonia. Ann Arbor, MI: A Bell & Howard, 1996.  

15 Loder, James. Educational Ministry in the Logic of the Sprit. Eugene, OR: Cascade Books, 2018.  

16 Loder, James. The Logic of the Spirit: Human Development in Theological Perspective. San Francisco: Jossey-Bass Pub., 1998. 

17 Loder, James. The Transforming Moment, Colorado Springs. CO: Helmers & Howard, 1989.  

18 Moltmann, Jürgen. The Trinity and the Kindom, trans. by Margaret Kohl, New York: Harper & Row, 1981.  

19 Niebuhr, Richard. Christ and Culture. New York: Harper & Row, 1975.  

20 Pannenberg, Wolfhart. Anthropology in Theological Perspective. trans. by Matthew O'Connell.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5.  

21 Polanyi, Michael. Personal Knowledge: Towards a Post-Critical Philosoph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22 Wright, Dana & Kuentzel, John. Redemptive Transformation in Practical Theology: Essays in Honor of James Loder. Grand Rapids, MI: William Eerdmans Pub., 2004.  

23 Wyckoff, Campbell. Theory and Design of Christian Education Curriculum.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1.  

24 Bollnow, Otto. Existenzphilosophie und Padagogik. 윤재흥 역. 『실존철학과 교육학: 비연속적 교육형식의 모색』. 서울: 학지사, 2008.  

25 Harvey, David.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구동회 외 역.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서울: 한울, 1994.  

26 Harris, Maria. Fashion Me a People. 고용수 역. 『교육목회 커리큘럼』.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89.  

27  Holmes, Arthur. All Truth is God's Truth. 서원모 역.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다』.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1. 

28 Loder, James. Educational Ministry in the Logic of the Spirit. 이규민 역. 『통전적 구원을 위한 기독교교육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0. The Knight's Move. 이규민 역. 『성령의 관계적 논리와 기독교교육 인식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29 Smart, Barry. Postmodernity. 이규헌 역. 『탈현대성의 개념』. 서울: 현대미학사, 1995.  

30 Kimball, Dan. "They Like Jesus but Not the Church." https://www.christiantoday. co.kr/news/206471 [2020. 04. 03 접속]  

31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 =3567432&cid=58941&categoryId=58960 [2020. 04. 16 접속] 

32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1 [2020. 04. 23](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91(2020.04.23)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