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ssay on the Psychological Consideration of the Hwataekyu, which is the Biyupum of the Sutra of the Lotus. - Centered on the Gesong of the Biyupum -

Research
정 영미  Youngmi Jung1*

Abstract

Regarding the Hwataekyu of the Biyupum of the Sutra of the Lotus, centered on the Gesong, this manuscript intends to consider its meaning through the psychoanalysis and analytical psychology viewpoint. It can be considered that the house on fire within Biyupum reflected the condition of the unstable mind and body of the people living in the three worlds (of Heaven, Earth, and People). It is that, although the root of the house on fire is fundamentally obscure, the people live while not being able to know the cause.

It can be considered that the house on fire is, also, a world that implicitly expressed the samsara world of the people. This world is the three worlds (of Heaven, Earth, and People) that portrayed the Okgye (The world of desire), which is full of desire, the Saekgye (Which is attached to the matters psychologically), and the Musaekgye, which came out of the material desire and the restriction.

I tried approaching the meaning that is possessed by this house on fire through the psychological viewpoints in the two directions. One likened the house on fire with the body of a person. And, regarding the other one, the animals that were born at the bad places had been looked at with the regressive meaning. The interpretation through such a viewpoint is because it can be considered that a person who suffers within the worry, the pain, and the anguish by falling into the samdok is the same as a house on fire. And it is because, as a result of the evil deed due to the egoism of the people, the fact of having become the samsara through an animal can be seen as a regression. Also, as a character representing the oppressed desire who has been wearing the mask of an animal to hide his insufficiency, Samgeo had been seen as a person who knows how to rescue himself only within the virtuality, which is not the reality, regarding the liberation from his own pain.

Because it possesses the very high wisdom, as an existence that includes the entire, potential personality, which is possessed by the other existences, the Great White Uger had been seen as a formation that had been evolved individually.

By regarding the existences with all of the appearances as the valuable existences, the Great White Uger makes them realize that they are the valuable existences, and the Great White Uger changes them in a miraculous way. Chang Tzu saw him as an alchemist who enables the meeting with the whole body of Buddha, which exists within the matter. Regarding the change of the alchemy, as a thing for carrying out the ojong (the five sects), if one understands while having the belief, because the 6 roots become clean, it makes the most pure and complete one. As a door for going to the truth, the door is narrow because it is difficult to know it. Because the people cannot know the truth, as the six doors of the sensory organs, it has been describing the yukdo people. It is a fact that such six doors are adapted to the conflict, too, of the inside, instead of the adaptation to the external conditions only. When looking at the Gesong of a house on fire, which has been awakening the foolish people, through a psychological viewpoint, it is considered that it can be understood that it leads the people who are suffering from the pain due to the biased energy to the unity by coming out of the pain.

Keyword



Ⅰ. 서론

『법화경』「비유품」속에 불난 집은 중생들이 사는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한다. 중생들은 무슨 이유로 불난 집에서 살고 있는지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생이 불난 집에 사는 이유를 「제자품」1에 설하고 있다. 그 이유 즉 “갖가지 사견에 빠져서 피안으로 건너가려 하지 않고, 팔난에 머무르며 장애가 없는 경계를 얻지 못하며, 많은 악마와 손을 잡아 온갖 번뇌의 벗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생이 삼계에 사는 한 탐욕, 성냄, 어리석음, 교만, 의심 등은 중생을 계속 따라다닌다. 이러한 것들은 불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천태지의는 불난 집의 모습을 과보와 번뇌로 비유했다.2 두 가지 모두 불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의 요소들은 모든 존재가 지닌 본질적인 속성이며 부처님의 지혜에 대한 무지, 그리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정신적 육체적인 어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의 요소들로 인해 불난 집에 사는 중생들을 정교하게 묘사한 것이 「비유품」의 게송이다.

게송의 내용은 어떤 장자가 크고 오래된 집을 지니고 있는데 그 집에서 불이 난다. 그 집에는 문이 하나여서 어린 아들들을 구할 수 없다. 장자는 아이들에게 장난감(羊車, 鹿車, 牛車)을 줄 테니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장자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장난감을 달라고 한다. 그러자 장자는 크고 힘이 센 대백우거(大白牛車)를 공평하게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는 이야기이다.

「비유품」의 전체적인 내용 및 게송에는 축생, 인간, 아귀의 특징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중생들의 윤회 세계를 표현한 삼계육도(三界六道)3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윤회라는 말 자체가 업력에 끌려다니거나 고통 등 바람직하지 못한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육취(六趣)로도 본다.

삼계는 선정과 수행의 단계를 추정하여 욕계(kama-dhatu), 색계(rupa-dhatu), 무색계(arupa-dhatu)인 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에 욕망이 가장 왕성한 경지를 욕계라 하고, 욕망은 성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물질에 대한 애착과 속박 등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색계라 한다. 그리고 물질적인 욕망과 속박, 구애(拘碍)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자재한 정신세계를 무색계라고 한다.4

중생이 불난 집에서 윤회하는 이유를 「여래수량품」에 이렇게 설한다.

본심을 잃은 아이들은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환희하고 문안드리며 병 치료를 원했으나, 그 약을 먹지 않았다. 왜냐 하면 독기가 깊이 들어 본심을 잃었으므로 이같이 좋은 빛과 향으로 지은 약을 좋지 않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5

여기서 독(毒)은 중생이 의심이 많아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도 못하고,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지도 못하고 공경하지도 못해서 아직 법도 얻지 못하였다. 그 결과로 삼계에 윤회하면서 불에 타고 근심 고통이 가득함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약은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의심을 끊고 진실한 가르침은 오직 일승뿐이라는 단의생신(斷疑生信)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지도론』에서 “중생은 위없는 도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한다.6 중생(衆生)은 악마와 악마의 백성과 악귀와 삿되게 의심하면서 믿지 않는 자와 선근을 끊는 자와 세간의 쾌락을 깊이 집착하는 자와 원수와 도둑과 관리와 사자 법 이리 등의 나쁜 짐승과 독벌레 등을 중생들이라고 한다. 중생들이 악마와 벗이 되었다는 것은 오욕락에 빠진 것으로 이해되며, 독기가 깊어 불에 타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독기가 깊어 불에 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중생이 진실한 눈을 뜨지 못하였기 때문임을『승만경』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빛깔을 보지 못하며(生盲), 칠일된 아이가 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7

화택유의 게송은 불난 집의 비유를 통해 삼계에서 윤회하는 중생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며 육도의 수레에서 법(일승)의 수레로 안전하게 옮겨가는 과정을 그려주고 있다. 이런 과정 중에 중생의 존재에 대한 퇴행적인 여러 가지 형태이거나 온전한 인간으로 되는 미래를 나타내는 자연스러움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택유의 심리를 나타난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시작한 정신과 치료이며,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정신분석은 한 사람이 현재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과거에 겪었던 여러 경험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행동, 사고, 감정 등을 연결시킬 때 ‘의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자유연상을 통해 ‘무의식’과 만나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아의 힘을 길러주는 치료 중 하나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무의식에는 억압적 성적 욕구나 충동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는 태초의 시간부터 내재하는 ‘원상’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조건이 되며 상징으로 표현된다고 보았다.

두 심리학은 인간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유품」의 게송과 유사한 점을 지녔음을 볼 수 있다. 장자와 아이들, 그리고 중생의 육도와 장난감을 통해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이룬다는 점에서도 관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논문은 두 심리학의 광범위한 분야의 분석적 장점을 살려 논하고자 했으며 기존의 논문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화택유의 게송에는 인간이 지닌 특징과 심리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과 심리 상태를 이운허의 묘법연화경을 텍스트로 하여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불난 집의 비유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

1. 불난 집의 심리학적 해석

불난 집 부분의 게송은 장자의 집을 설명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장자의 집은 크나 낡았고 기둥이나 대들보가 썩어서 기울어져 있으며, 지붕이나 서까래가 썩어 내려와 부서졌다.

천태지의는 『법화문구』8에서 당(堂)은 몸의 하부를 비유하고, 각(閣)은 머리 등 몸의 상부를 비유하고, 장벽은 가죽과 살을 비유하고, 무너짐은 노후를 비유하고, 기둥뿌리는 두 발을 비유하고, 썩음은 무상(無常)을 비유하고 있으며, 대들보는 척골(脊骨)을 비유하고, 위태로움은 대기(大期)9를 비유하고, 주장굴곡(周障屈曲)은 대 · 소장(腸)을 비유하고, 또 마음을 비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집의 구조물에 사람의 신체를 비유한 것은 삼독에 빠져서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고뇌 속에서 시달림을 받을 것을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5욕과 재물을 탐하고 구하느라 현세에서 많은 고통을 받다가, 후세에는 다시 삼악도의 고통을 받게 되는 중생의 사이클임을 알 수 있다.

「불타오름 경, Aditta suttra」에는 일체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태어남과 늙음 ·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정신적 고통 · 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는 세존의 말씀이 있다.10 불타오르는 것은 변위(變位)된 활동기간 동안 즐거움의 획득은 주 영역을 떠나 다른 영역으로 향한다. 다른 영역으로 향한다는 것은 특정한 부분을 따르며 표현하고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11 이것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불타오르는 것은 증익(增益)과 감소(損滅)의 집착을 일으킨다. 집착에는 업과 과보 그리고 신체가 합해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12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에는 자아가 있다. 자아의 본질은 널리 상주하고 있으므로 거처하는 곳에 따라 업을 짓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자아는 신체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감고 펴는 것이 있고, 극히 미세해서 집착하기 때문에 신체에 내재하여 옮겨 다니면서 업을 짓기 때문이다.

업은 DNA와 유사함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생존의 분자는 자기 복제라는 방법을 이용해 여러 종류의 생활(身 · 口 · 意)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DNA 분자는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고 하는 작은 단위 분자로 구성된 긴 사슬로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DNA는 우리의 몸속에서 살고 있으며, 각 세포에 분포해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수는 약 1015개이나 예외적으로 세포들 각각에는 그 신체에 대한 완전한 DNA 사본이 들어 있다. 사본이 들어 있다는 것은 복제라는 중요한 일을 한다. 유전자는 신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제어 과정은 일방통행이다.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에 프로그램을 짜 놓은 것을 도와줌으로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전자는 생존이나 번식을 위한 것은 몸의 기능과 같지만, 유전자는 업이나 과보처럼 특정한 조각 사본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전자의 자기 복제는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 전파와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싶은 심리를 반영한 예라 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진 심리인 자신이 속한 집단이 우수하며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의식으로 작용하여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집단에 대한 애착심과 뭉쳐서 자아가 되어있는 자기의 조직적 · 보호적이며 자기들에 맞게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주체성을 의심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화택유의 게송에 또 다른 특징은 축생들의 고유한 특징들을 묘사하고 있다. 파충류는 서로 기고, 여우류는 서로 물고 뜯으며 찢었으며 배 주린 개들은 이리저리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서로 다투고 짖어대며 집안의 무서움을 가중(加重)한다.

해밀턴은 「이기적 무리의 기하학 (Geometry for the selfish herd)」이라는 논문에서 집단생활의 이점은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기적 무리’란 ‘이기적 개체들의 무리’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이기적 무리’는 악행의 결과로 태어난 축생으로 볼 수 있다. 축생은 네 발로 걷거나 움직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악업의 결과로 태어나는 비참한 세계임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한다.

『청정도론』에서는 악처(惡處)13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참한 곳은 모두 지옥의 동의어로 고통스럽게 태어날 곳이고 괴로움의 의지처이며, 성냄이 많은 연고로 나쁜 업으로 생긴 나쁜 곳이다.

나쁜 행위를 저지른 자들이 별도로 분리되어 떨어지기 때문이고 혹은 그들이 멸할 때 사지가 찢긴 채 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파멸처이다. 여기에서는 만족을 인식할 길이 없기 때문에 지옥이다.14

악처로 연결되는 것은 금생(今生)의 마지막 마음(죽음 직전)이 일어났다가 멸한다. 그 마지막의 마음이 멸하면서 바로 다음의 대상으로 하여 심장 토대를 갖기도 하고 갖지도 않기도 하며, 무명의 잠재성향에 의해 던져졌고 갈애의 잠재성향에 뿌리박혀 행(行)에 의해 생기며, 관련된 마음부수들과 결합되어 다음 생을 연결하는 재생연결식이 다음 생에 마음으로 확립되기 때문이다. 다음 생으로 마음이 연결된다는 것은 주위 환경에 잘 적응한 형질이 살아남아 다음 생까지 전해져 내려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종의 기원』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일어난 변이(variation)가 유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가축에서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보았다.15 이것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맹목적인 욕망과 힘과 배제에 필요한 구조로 조금씩 확보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이는 여러 동물의 본능 및 심리적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특정한 적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동물이 같은 적을 두렵게 하는 것을 봄으로써 더 커짐을 알 수 있다. 이런 심리 작용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또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른 본능을 가질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본능과 유사한 습성 또한 신체의 일정한 시기 및 상태와 쉽게 결합하고, 한번 몸에 익으면 평생 변하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한다. 신체 구조의 변화는 사용함으로써, 습성에서 생기고 증대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축소되거나 소멸하는데, 본능은 모르는 사이에 축적된다고 본 것이다. 정신 상태나 일생의 시기와 결합한 모든 성향과 기호는 유전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하였다.16 이것은 동물의 변이와 축생의 업이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둘 다 무한 회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축생의 행동이 계속해서 나타나며, 뒤의 행동이 앞의 행동을 무효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축생이 어떤 의도(所表)를 갖고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바뀔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행동들은 힘이 비슷한 반대 방향의 충동을 나타내며 새로운 방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늑대인간」의 소년의 꿈에 나타난 사례 분석을 하였다. 소년의 꿈에 나타난 늑대는 성적 충동을 억압하는 기능으로 한 것으로 늑대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늑대의 공포증은 소년의 성적 충동을 모두 억압시킨 것은 아니다.

소년은 작고 힘없는 벌레들을 가학하면서 성적 충동을 긍정하는 반응도 불러일으켰다.

프로이트는 마음에 갈등이 진행되고 있으면 강박증적인 두려움이 강박적인 소망과 동시에 나타난다고 하였다. 어떤 두려움의 대상은 불확실성이 특징인데, 그 불확실성은 신경증의 모든 증상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17

동물이나 늑대인간의 사례에서 보듯 두려움에 대한 무의식적 억압은 다른 상이나 환경 속에서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마음의 갈등은 자신의 자체 속에 살아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답을 얻어야 한다.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통일의 상태로 퇴행(regression)함으로써 극복을 하거나 또 하나는 충분히 태어나는 것으로서 자기중심적 관여(involvement)를 초월하여 새로운 합일에 이르는 지점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평범하지 않은 일이고 따라서 그를 방해하고, 놀라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일이라면, 그는 우리가 초자연적인 기원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물론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경험의 세계에 속한다고 하였다.18

화택유의 게송에 축생들은 존재의 답에 퇴행적인 시도를 여러 형태로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축생들의 퇴행적인 시도의 공통적인 것은 고뇌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퇴행은 여러 단계에서 발견되는데, 인간 이전의 자연과의 통일에서 떨어져 나와서 죽음이나 광기(狂氣)로 회귀를 이룰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퇴행의 또 다른 형태는 파괴성에 있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하려는 것이다.19 또한, 현실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자기의 뜻에 일치시키려는 충동을 지니고 반응하거나, 혹은 자기가 불가능한 것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무력감을 지니고 반응하게 된다.

『아귀보응경』에서는 퇴행으로 오는 마음의 심정을 아귀가 목건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몸을 받은 이후 늘 더러운 가운데 있게 되고, 온몸이 더러운 것으로 발라지며, 먹는 것 또한 모두 더러운 것입니다. 늘 이러한 고통을 받아 벗어날 수가 없고, 냄새와 번뇌가 몸에 얽히고 근심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20

이 몸을 받은 이후 성품에 두려움이 많아져 항상 사람이 와서 가두고, 얽매며, 칼을 씌우고, 매질할 것만 같아 조금도 마음이 기쁜 적이 없습니다.21

천태의 마라(魔羅)22는 퇴행의 작용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魔)는 항상 중생의 선근(善根)을 파괴하여 생사의 윤회계에 유전(流轉)시키는 것을 일로 삼고 있다. 마라는 마음을 괴롭히고 흐트러지게 하는데, 이 마는 두려워할 오진(五塵)을 만들어 공포를 느끼게 하고, 사랑스러운 오진을 만들어 애착을 낳게 하며, 감정에 거슬리지도 순응하지도 않는 일을 하게 하는 마음의 그릇됨을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이 본래 참되고 깨끗한데 허망한 소견으로 인하여 허망한 습기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능엄경』에서는 귀신의 업보가 다 끝나면 정(情)과 상(想)의 둘이 함께 공해져야 비로소 세상에서 원래 빚진 사람이나 원한의 상대로 서로 만나서, 축생이 되어 묵은 빚을 갚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건을 탐했던 귀신은 올빼미류로 되고, 남을 의심한 귀신은 죽은 짐승에 붙어 여우류가 되며, 성을 잘 낸 귀신은 죽은 곤충에 붙어서 독사의 무리가 된다고 하였다.23

2. 삼거(三車)와 대백우거(大白牛車)의 심리학적 해석

경전에 의하면 양의 수레(羊車, 성문승)는 사성제를 닦고, 사슴 수레(鹿車, 벽지불)는 십이연기를 닦고, 소의 수레(牛車, 보살)는 육바라밀을 닦으면 자재하여 얽매임이 없고, 의지하거나 구할 것이 없다고 보았다. 삼거 모두 수행자로서 성인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지만, 중생요익(饒益)의 관점(대백우거)으로 본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삼거를 가르치고 보이시지만 집착으로 인해 미묘한 법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삼거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싫어하는 행동을 감추기 위해 쓰려는 가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생활 속의 역할을 자신이라 착각하는 경향에서도 볼 수 있으며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서 오는 자신의 덫이라 할 수 있다.

가면은 개인의 의식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연상되는 상황이나 외부의 자극으로 억압된 기억이나 환상, 이미지 등을 떠올리게 해 의식에 동요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면으로 인해 억압된 자아가 그림자이다. 억압한 온갖 어두운 욕망들을 ‘그림자 인격’으로 형성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욕망은 동물에 수많은 환상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이해해보려고 해 왔다. 자신의 내면에서 억압된 대립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오직 가상 속에서만 스스로를 구원할 줄 아는 가장 고통 받는 자, 가장 대립적인 자, 가장 모순적인 자의 영원한 변전이고 영원한 환영의 세계는 성취되는 구원의 신(神)인 것이다.24 구원의 신이라고 여기는 가면을 『수능엄경』에서는 “이것은 모두 자기의 허망한 업으로부터 불러들인 것”이라고 하였다.25

가면이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주관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으나, 표상하는 모든 존재에 나누어지지 않은 채 온전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관과 객관이 서로 접하는 경계인 우리의 의식 속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26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고착을 통하여 독자적인 권능으로 행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의식적 통찰을 허용하지 않는 내적 필연성에서 오는 것으로 무의식적 욕망이 동반하고, 무의식을 지배하는 심리적 조건 아래서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27 무의식을 지배하는 조건들은 무엇에 의해 일어나는가에 대하여「폭류경 Ogha sutta」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폭류28에는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의 폭류, 존재의 폭류, 견해의 폭류, 무명의 폭류가 있다.29

폭류에 가라앉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고 아등바등하지 않아야 한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오염원 때문에 멈추어 서지 않는 것이며, 아등바등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정진을 통해서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생은 허망한 생각으로 분별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현상을 보기 때문에 폭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생이 그릇된 망상으로 분별하는 것은 사물 현상의 진실된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확대된 해석은 분화(分化)라는 다른 식으로 조건화되어, 개인에게 적응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조건에 맞게 잘 수행하는 주기능으로 발전하게 되거나 덜 유력한 기능은 억압된 기능으로서 계속 무의식으로 남아있게 된다.

자연인(natural man)들은 스스로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초원의 영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초원의 영혼은 야생동물이나 숲속의 나무의 형태로 나타나고, 자연인은 이에 대해 무의식적 동일성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것은 자연인의 마음이 통합된 상태가 아니라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해 쉽게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공격을 받은 마음은 분열되어 자연인의 자기의 동일성을 상실해 버릴 수 있다. 무의식이 어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나타난다. 자연인의 동일성을 상실한 상태를 『수능엄경』에서는 등불에 비유한다.

등불을 방 안에서 켰을 때 그 불빛은 반드시 먼저 방안을 비추고 나서 방문을 통하여 뒤에 뜰에까지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중생이 몸속을 못 보고 몸 밖만을 보는 것은, 방 밖에 있는 등불이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30

동일성의 상실은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동물로 부터의 심리적 거리감이 시작되는 것으로 해체되어가는 과정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이상과 현실이 서로 얽혀져 있는 신비한 길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백우거(大白牛車)는 삼거의 모든 외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하여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었고 그들에게 빛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그들을 기적적으로 대백우거로 변형시켜준다. 이런 관점에서 대백우거는 성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자비와 선의 창조자라고 볼 수 있다. 『법사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창조자를 설명하고 있다.

약왕이여, 이 사람은 청정한 업과 과보를 스스로 버리고, 내가 열반한 후에 중생을 어여삐 여기어 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이 經을 연설하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이 선남자 · 선여인이 내가 열반한 후에 은밀히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말해 준다면, 이런 사람은 곧 여래께서 보낸 사자이며, 여래의 일을 행함이라. 하물며 대중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위해 설법함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31

청정한 업에 따른 과보를 마다하고, 원생으로 사바세계에 태어나 여래의 사도로서 여래의 일을 행하는 법사이자 대보살이다. 이는 스스로 수행하고 다른 이를 교화하는 것인데 현상과 이치(事理)가 다 갖추어져 마음을 관하는 데 장애가 없어 이전보다 더욱 수승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32

대백우거는 중생들의 집착을 통합하는 역할자이다. 중생들의 집착은 불난 집의 육체와 삼거의 정신적 집착의 편중(偏重)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백우거는 절대적인 무로 사라지는 것도 없고 무로부터 오는 것도 없으므로 자기초월체(superject)로 볼 수 있다. 자기초월체는 새로운 존재의 생성을 조건 짓는 가능태(potentiality)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가능태의 속성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增上慧殊勝)을 말한다.33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은 무분별지혜(無分別智慧)의 자성 · 의지처 · 인연 · 인식대상(法) · 인식작용(行相) · 맡아 지님 · 돕는 짝 · 이숙 · 등류 · 벗어남 · 궁극에 이름 · 가행(加行)의 지혜와 무분별지혜와 후득(後得)지혜의 뛰어난 이익 · 차이 · 무분별지와 후득지혜의 비유 ·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 짓는 사업 · 매우 심오함 등이다.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은 「법사품」의 비유에서 나오는 ‘물’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물은 본래 청정하고 때가 없고 맑고 고요해서 매우 높은 지혜의 뛰어남과 같다고 본 것이다. 이런 심리적 상태는 자기 자신으로 있지만 다른 것들에도 참여하여 잠재적으로 그것이 속해 있는 인격성 전체를 자신 안에 포함하는 것으로 독립된 진화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물질의 필연을 극복하는 행위 능력의 정도와 자유의 정도에서 그 존재 수준이 가늠된다. 이 존재 수준은 현실화에 따라 달라진다.

차이(三車)를 생산하는 잠재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삶의 주체로 만든다는 것이다. 중생의 괴로움이 번뇌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고 자기의 몸이 복전(福田) 중에 뛰어난 것을 아는데, 다른 이의 번뇌가 다시금 자기를 인연으로 하여 생겨날까 두려워하여 고의로 형태의 지(智)를 낳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에 의해 다른 중생들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인연으로 하여서 탐과 진을 낳지 않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34

Ⅲ. 長者와 門의 심리학적 이해

1. 장자와 연금술사

『법화경』에서는 장자가 방편으로 중생들을 구해준다. 「비유품」에서는 장난감으로, 「신해품」에서는 재산으로, 「여래수량품」에서는 양약으로 중생을 구한다. 장자의 방편들은 ‘원물질’ 자체로 볼 수 있다. 이 물질은 모든 것을 생성하고 그 안에 모든 것을 함유한 것을 암시하며, 그 속에서 길을 잃고, 그 속에서 잘못된 것이 고쳐진다.35

「비유품」과 「신해품」에서는 이러한 근원적인 물질을 찾게 되는 것을 이렇게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똥오줌 냄새가 나는 곳이며 더러운 것이 가득한 36

몸은 야위어 앙상하고 흙과 먼지로 더럽혀져 있는데37

더러움을 씻기 위해서는 정화가 될만한 물질을 찾아야 한다. 천태는 『법화문구』에서 사주(四住)를 분토(糞土)라 하였고, 무지(無知)를 진분(塵忿)이라 하였다. 근원적인 물질을 찾기 위해서는 둘(淨, 染) 이상이 공존할 수 없기에 한 영역이 부정적인 영향을 오염원으로 할 수 있다.

장자는 어리석은 자가 생각하는 비천한 눈으로 볼 수 없는 방편으로서 중생들을 구하는 것이다.

장자와 연금술사는 두 개의 극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데 그 정신에는 심리적인 투사로 채워지며 질료가 외관상으로 드러내는 특성과 의미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특징은 탐욕이 없고 변덕스럽지 않으며 확고한 결단과 인내를 갖춘 온화한 정신의 소유자들임을 알 수 있다.

장자가 방편을 쓰면 연금술사는 처방을 내린다. 둘의 공통점은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악용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누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밀은 본체를 암시하는 다양한 상(Blinder)들을 통해 암시된다. 프로이트는 상징의 선택이 그 생각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다.38 유마경 「불도품」에서 보현색신 보살이 유마힐에게 다양한 상을 묻자 유마힐은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답한다.

반야바라밀다는 보살의 어머니 방편바라밀다는 보살의 아버지 모든 중생을 이끄는 스승이 여기에 의지하지 않고 태어나는 일 없도다

법의 기쁨은 보살의 아내 자비의 마음은 보살의 딸 착하고 성실한 마음은 보살의 아들 필경 공함은 보살의 집이로다

여러 번뇌는 제자들 보살은 뜻에 따라 다스려 가고 37도품은 보살의 선지식 이것들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네39

유마힐의 상들은 그의 질료(質料)40를 자신의 심혼 배경에 설명되어야 하는 대상에 투사(Projektion)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의도적이 아니라 저절로 되는 것이다. 투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으로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고유한 내면의 것, 또는 심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생명력이 있는 형상들로 채우려 하는 모든 곳에서 투사는 계속됨을 알 수 있다.

장자의 질료는 오종(五種)으로 어느 곳에서나 설하고 읽고 외우고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질료 속에는 여래의 전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생 가운데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이가 질료를 믿고 이해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운 줄 알게 되며 능히 보살의 도를 잘 이행하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8백의 눈의 공덕과 1,200의 귀의 공덕과 8백의 코의 공덕과 1,200의 혀의 공덕과 8백의 몸의 공덕과 1,200의 뜻의 공덕을 얻으므로 6근을 다 청정하게 한다. 이것은 연금술에 비유하여 본다면, 가장 순수하고 완전하게 하나가 되기 위한 것으로 연금술의 완성으로 볼 수 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장자의 주체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장자가 하나됨은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장자의 심리적 조건이며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연금술은 변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교시(敎示)를 내린다. 원질료(여래)는 혼돈의 속성을 지닌 상태로 중생들을 불난 집으로부터 분해된 상태를 만든다. 이 분해된 상태를 전제로 합일에 따라 대극(육체, 정신)의 합일이 이루어진다. 합일된 산물이 점차 하얗게 되면서 모든 색이 함유된 하나의 흰색(대백우거)으로 옮기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변화 단계들의 순서는 연금술사(장자, 長者)가 목표로 하는 표상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질료의 개념과 전형적인 대극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사(장자)는 육체(불난 집)와 정신(삼거)이 하나임을 보여준다.

2. 문(門)의 심리학적 이해

불난 집의 비유에서 집은 매우 크고 넓었으나 대문은 협소하며 단 하나뿐이다. 천태는 『법화문구』에서 진리는 순수해 잡됨이 없으므로 일(一)이라 하고, 진리에 통하므로 문(門)이라고 하였고, 진리는 미묘하여 알기가 어려우므로 협소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에 비추어 볼 떄 진리는 중생들에게 골고루 비를 내리지만, 중생은 진리가 미묘하고 어려워서 빈궁한 아들처럼 두려운 생각에 불난 집에 머물면서 윤회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택유의 게송에서는 낡은 집을 육처(六處)에 비유하고 있으며, ‘문’을 육도 중생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귀신과 새들은 소리로(耳), 악한 짐승과 독한 벌레는 구멍으로 숨어들고(鼻), 크고 악한 짐승들이 몰려와서 사체를 먹고(舌), 구린 연기 자욱하여 사면에 가득하고(眼), 지네와 독사의 뭇 것들은 불에 데고(身), 화재로 인해 고통 점차로 끊임없이 상속하며(意) 육문(六門)으로 들어온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세 가지 종류로 보았다. 하나는 심소(心所)에 어리석어 모두를 ‘아(我)’라고 집착하며, 둘은 색에만 어리석으며, 셋은 색과 심(心)에 어리석음이 있다고 하였다.41 이는 모든 욕망에 탐착하는 것과 모든 견해에 탐착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정신분석에서는 억압된 무의식의 관념화된 콤플렉스로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하였으며, 충족되지 않은 욕망에서 생겨나며, 또한 좌절된 욕망을 상쇄(相殺)하는 일종의 대리 만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42

일상의 사회적 경험에 침투하고 있는 실감(實感)으로서의 ‘자기감(自己感)’43을 스턴44은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가 영역으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각각의 자기감이 발달과정에서 통과 단계 없이 일단 형성되면 평생을 통해 활동을 계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각각의 영역에서 병리는 평생을 통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자기감(核心自己感)은 생후 2~3달쯤에 사교적 행동으로 높아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경계를 특히 독립적인 신체적 단위’라는 감각을 바탕으로 신체적 친밀감을 특색으로 한다. 그 핵심자기감을 촉진하는 것이 ‘자기발동성(自己發動性)’, ‘자기일관성(自己一貫性)’, ‘자기의 연속성(自己連續性)’, ‘자기정동성(自己情動性)’이라는 네 가지 ‘자기 · 불변요소(不變要素)’이다.45

자기감은 육문의 경험 각각에서 비롯한 일련의 복잡한 행동들을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매우 제한된 경험을 토대로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경험들은 의존적 방식을 선택하여 더 나은 무언가를 찾아 헤맬 수 있는 집착을 보일 수 있다.

원효는 자기감이 유득(有得)의 집착임을『금강삼매경론』에서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미혹한 아들이란 모든 중생이 자기의 심원(心源)에 미혹한 것이다. 여래께서 대비로 외아들 보듯이 간주하기 때문에 미혹한 아들에 비유한 것으로 미혹한 아들은 전체의 군생(群生)에 비유되느니라.46

군생이란 매 순간 변화할 뿐이며, 한순간 다음에는 다른 것이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며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중생은 반복되는 주제와 연속성 속에서 자아라는 이미지를 쌓아 무수한 관념들과 영상을 만들어준 마음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심과 집착 때문에 특정한 인격이 발달하며, 자기의 견해가 생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이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으며,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차이는 있겠지만, 외부에서 이어받아 차츰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인간의 발달과정과 보조를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융은 우리가 원형(archaic man)의 세계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우리의 정신 능력이 원형보다 더 분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형의 삶에 다시 적응함으로써 구원을 구하는 것이며, 좁은 공간에서 원형의 그림을 그릴 수 없으므로 원형의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포괄적인 일이라고 하였다.47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 인간의 전체성이라면, 또는 가공의 실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자기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능엄경』에서는 진실한 마음에 관하여 이렇게 설하였다.

모든 세계의 존재에서 조그만 풀 잎새가 가느다란 실 가닥까지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자체의 성품이 있고, 허공일지라도 이름과 모습이 있는데, 더욱이 청정하고 미묘하고 맑은 밝은 마음은 일체 마음의 본성인데 어찌 자체가 없겠느냐. 만일 네가 분별하고 깨닫고 살피고 냄새를 맡고 맛을 알고 닿음을 느끼는 온갖 경계들을 떠나서, 별도로 완전한 제 성품이 있어야 한다. 네가 지금 내 설법을 받들어 듣고 있을지라도 소리를 따라 분별하고 있으며, 가령 일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사라져서 안으로 고요한 경계를 지킬지라도, 오히려 법의 경계를 분별하는 그림자뿐이니라.48

진실한 마음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허망한 생각(煩惱障, 所知障)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전개 과정에 혼란스럽고 어둑하여 일관성을 잃고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내면의 경험 중에도 내면의 눈이나 가슴에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자신의 마음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객관적이지 못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난 집의 문’은 내면의 경험들을 외적 형태로 바꾸어 보여 준 예라고 할 수 있다. 불난 집의 문에서 중생 자신이 관찰을 통해 얻은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좁은 문에 갇히지 않도록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발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관찰은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을 보게 함으로써 합리적인 사고와 원시적인 본성이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 이 같은 상황은 더없이 진부(陳腐)하다는 사실을 잘 알게 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의식적인 대답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없이 반복되었으며, 사람의 마음 혹은 의식 혹은 정신이나 삶을 다루는 방법이 축적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육문(六門)이 축적된 체계들이다. 이 축적된 체계들은 외부 조건에만 적응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도 적응이 되어 있다.

육문은 중생들을 감금한 자물쇠다. 잠금을 해제(解除)한 것은 장자와 대백우거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딘가에 갇히거나 잡혀 달아날 수 없는 곳에 있을 때 동물이나 장자가 나타나 빠져나갈 길을 알려준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재앙만 남은 상황에서 유익한 동물이나 장자가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인간이 존재 전체와 하나 되며 성스러움과 일치하는 속에 사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스러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성스러움을 표시하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 성스러움의 표시는 살아 있는 의미를 전달하고, 사람들이 성스러움의 세계에 대한 의식을 깨우치고 유지하도록 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Ⅳ. 결론

화택유의 게송은 삼계라는 낡은 집에 불이 난다는 이야기이며, 이곳에 사는 중생들을 삼독의 불로부터 제도하려고 장자가 방편을 쓴다는 깨달음의 이야기다. 중생들이 불타는 집에서 고통을 받으며 뛰어다니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바로 볼 줄 모른다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생이 삼독의 불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가중되는데 그 근원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중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온 것이 장자며 대백우거이다.

불에서 나온 자식들에게 삼거를 주지 않고 평등하게 나누어 준 대백우거는 중생들의 정신과 육체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정화제이다. 그리고 장자가 삼거를 주지 않고 대백우거를 나누어 준 것에는 자신이 먼저 하나가 되지 않고는 자신이 추구하는 ‘하나’를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대백우거를 통해 하나됨의 정신적 동기를 보여주며, 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 건강과 성장을 촉진한다고 볼 수 있다.

장자는 불난 집과 대백우거를 이용해 순수한 물질을 만드는 연금술사와 같다. 이러한 두 가지는 대극적임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연금술사는 물과 불이 하나임을 증명한다. 연금술에서 불순한 덩어리를 ‘라토(lato)’라고 하는데 이 불순한 덩어리를 순결하게 씻는 것 또한, 불이다. 도른(Dor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육체에는 어떤 형이상적인 실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다. 이것은 내적인 약제로 자체가 진정한 약제이다.’49 이 약제의 실체는 ‘진리’이다.

개인 속에 저장된 에너지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한 가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면 자연히 결함이 생기게 된다. 에너지는 역동적이면서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그 작용은 습성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에너지를 다른 사물을 향해 작용하면 대상애(對象愛)가 형성된다. 대상애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고착(固着), 퇴행(退行), 억압(抑壓) 그리고 승화(昇華)가 된다. 이것은 육문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습성화된 육문으로의 에너지를 불난 집(육체)과 삼거(정신)를 융합해 하나로 만든 것이다.

화택유의 게송을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의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무의식적 갈등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퇴행이나 과도한 억압으로 인해 불안한 육체와 정신을 괴롭히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내외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제를 사용하는 자아이다. 이 기제는 억압된 욕망을 의식화할 때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요약

이 원고는 『법화경』「비유품」의 화택유에 관하여 게송을 중심으로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그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비유품」속 불난 집은 삼계에 사는 중생들의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의 상태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난 집의 근원은 근본 무명인데도 중생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불난 집은 또한 중생들의 윤회 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세계로 볼 수 있다. 그 세계는 욕망이 왕성한 욕계와 정신적으로 물질에 애착하는 색계, 그리고 물질적인 욕망과 속박에서 벗어난 무색계를 그린 삼계이다.

이 불난 집이 지닌 의미를 두 방향의 심리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보았다. 하나는 불난 집을 사람의 신체에 비유한 것으로, 다른 하나는 악처에 태어난 축생들을 퇴행적인 의미로 보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의 해석은 삼독에 빠져 근심과 고통, 고뇌 속에 시달림을 받는 사람을 불이 난 집과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중생들의 이기심으로 인한 악행의 결과로서 축생으로 윤회하게 된 것은 퇴행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삼거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동물의 가면을 쓰고 있는 억압된 욕망을 나타낸 인격으로써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현실이 아닌 오로지 가상 속에서만 스스로를 구원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보았다.

대백우거는 매우 높은 지혜를 지니고 있어 다른 존재들이 지닌 잠재적 인격성 전체를 포함하는 존재로서 개별적으로 진화된 형성체로 보았다.

대백우거는 모든 모습의 존재들을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하여 그들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고, 기적적으로 변화시킨다.

장자는 질료 속에 존재하는 여래의 전신을 만나게 해 주는 연금술사로 보았다. 연금술의 변화는 오종을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믿음을 갖고 이해하면 6근이 청정해져서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하나가 된다.

문(門)은 진리로 통하는 문으로 알기가 어려워 협소하다. 중생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에 감각기관의 육문으로 육도 중생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육문은 외부 조건에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도 적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리석은 중생을 일깨워 주고 있는 불난 집의 게송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편중된 에너지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고통으로 벗어나 합일로 이끌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주제어 : 화택(불난 집), 윤회, 퇴행, 삼거, 대백우거, 장자, 연금술, 문

Footnotes

1 『유마경』(대정장 14, 540하쪽)

2 『법화문구』(대정장 34, 67상쪽) “先出所燒之宅相 譬六道果報 次明能燒之火 譬八苦五濁”

3 삼계육도의 삼계는 육계, 색계, 무색계이며 육도는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도, 아수라 등의 6종을 말한다.

4 대림스님·각묵스님옮김,『아비담마길라잡이』1,(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8), 115-118쪽.

5 『묘법연화경』(대정장 9, 43상쪽) “餘失心者 見其父來 雖亦歡喜問訊求 索治病 然與其藥而不肯服 所以者何 毒氣深入失本心故 於此好色香藥而謂不美”

6 『대지도론』(한글대장경, 2287쪽)

7 『승만경』(한글대장경, 23쪽)

8 『법화문구』(대정장 34, 67상쪽) “堂譬身之下分 閣譬頭等上分 牆壁譬皮肉 頽落譬老朽 柱根譬兩足 腐敗譬無常 梁棟譬脊骨 傾危譬大期 周障屈曲譬大小腸 又云譬心云云”

9 기(期)는 약속된 기일을 말하며, 애를 출산하는 열 달이 기(期)다. 그런데 열두 달이 되었으므로 대기(大期)라 한다. 산달을 두 달이나 넘긴 산모의 위태로움을 의미한다.

10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4, (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8), 120-122쪽.

11 C.G.JUNG,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New York:Dover Publications, 2019), 161쪽.

12 『성유식론』(대정장 31, 1중쪽) “業果及身與諸我合”

13 악처는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등을 말한다.

14 붓다고사 스님 지음,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2, (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7), 383쪽.

15 찰스다윈, 송철용 옮김, 『종의기원』, (서울:동서문화사, 2016), 282쪽.

16 찰스다윈, 송철용 옮김, 『종의기원』, (서울:동서문화사, 2016), 280쪽.

17 김명희 옮김, 『늑대인간』, (파주:열린책들, 2013), 19쪽.

18 C.G.Jung, Modern Man in Serch of a Soul, (New York:Routledge, 2001), 130쪽.

19 이운허 옮김, 『묘법연화경』, (서울:동국역경원, 2015), 85쪽.

20 『아귀보응경』(한글대장경, 5쪽)

21 『아귀보응경』(한글대장경, 9쪽)

22 『수습지관선법요』(대정장 46, 47중쪽) “魔羅”는 마(魔)라고 하며, 그 뜻은 악마, 죽이는 자(殺者), 목숨을 빼앗는 것(奪命), 장애(障碍) 등.

23 여천무비 감수, 일귀 역주, 『수능엄경』, (서울: 샘이깊은물, 2015), 633-634쪽.

24 이진우 옮김, 『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 (서울:책세상, 2016), 17쪽.

25 『수능엄경』(대정장 19, 145중쪽) “此等亦皆自虚妄業之所招引”

26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서울:을유문화사, 2019), 42-43쪽.

27 이윤기 옮김, 『종교의 기원』, (파주:열린책들, 2013), 70쪽.

28 중생들을 윤회의 바다에서 삼켜버리거나 가라앉게 한다고 해서 폭류이다.

29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4, (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8), 520쪽.

30 『수능엄경』(대정장 19, 107중쪽) “譬如燈光然於室中 是燈必能先照室内 從其室門後及庭際 一切衆生不見身中獨見身外 亦如燈光居在室外不能照室”

31 『묘법연화경』(대정장 9, 30하쪽) “藥王當知 是人自捨清淨業報 於我滅度後 愍衆生故 生於惡世廣演此經 若是善男子善女人 我滅度後 能竊爲一人説法華經乃至一句 當知是人 則如來使如來所遣行如來事 何況於大衆中廣爲人説”

32 『천태사교의』(대정장 46, 779중쪽) “謂自行化他事理具足 觀心無閡 轉勝於前”

33 『섭대승론석(세친,현장)』(한글대장경, 215쪽)

34 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4, (서울:동국역경원, 2015), 1238쪽.

35 한국융연구원 C.G. 융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 (서울:솔, 2006), 24쪽.

36 『묘법연화경』(대정장 9, 13하쪽) “屎尿臭處 不淨流溢”

37 『묘법연화경』(대정장 9, 17상쪽) “羸痩憔悴糞土塵坌汚穢不淨”

38 C.G.JUNG,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New York:Dover Publications, 2019), 233쪽.

39 『유마경』(대정장 14, 549하쪽) “智度菩薩母 方便以爲父 一切衆導師 無不由是生 法喜以爲妻 慈悲心爲女 善心誠實男 畢竟空寂舍 弟子衆塵勞 隨意之所轉 道品善知識 由是成正覺”

    

40 질료는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에 대한 질료라는 관념으로 질료는 재료이며 이것에 형상이 가해짐에 따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物)이 된다. 형상은 현실성이고 질료는 가능성이다.

41 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 (서울:동국역경원, 2015), 40쪽.

42 김석희 옮김, 『문명 속의 불만』, (파주:열린책들, 2013), 15쪽.

43 자기 자신의 감정,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자기만이 느끼거나 판단하는 것으로 경험적 통합.

44 스위스 정신요법 의사이며, 현대 정신분석적 발달심리학의 저자이자 정신의학자.

45 大場 登 · 森さゟ子, 『精神分析とユング心理学』, (東京:放送大学敎育振興會, 2019), 66-68頁.

46 『금강삼매경론』(대정장 34, 980하쪽) “迷子者 謂諸衆生迷自心源 如來大悲如視一子 故喩迷子 此中迷子通喩群生”

47 C.G.Jung,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New York:Routledge, 2001), 127쪽.

48 『수능엄경』(한글대장경, 15쪽)

49 한국융연구원 C.G. 융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 (서울:솔, 2006), 67쪽.

References

1 

2 『금강삼매경론』 

3 『묘법연화경』 

4 『법화문구』 

5 『성유식론』 

6 『수습지관선법요』 

7 『수능엄경』 

8 『유마경』 

9 『천태사교의』 

10 『대지도론』(한글대장경)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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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대지도론』(한글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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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대지도론』(한글대장경) 

19 『아귀보응경』(한글대장경) 

20 『섭대승론석(세친,현장)』(한글대장경) 

21 『승만경』 (한글대장경) 

22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4, 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8. 

23 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4, 서울:동국역경원, 2015. 

24 김명희 옮김, 『늑대인간』, 파주:열린책들, 2013. 

25 김석희 옮김, 『문명 속의 불만』, 파주:열린책들, 2013. 

26 대림스님·각묵스님옮김,『아비담마길라잡이』1, 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8. 

27 붓다고사 스님 지음,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2, 울산:초기불전연구원, 2017. 

28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서울:을유문화사, 2019. 

29 여천무비 감수, 일귀 역주, 『수능엄경』, 서울: 샘이깊은물, 2015. 

30 이운허 옮김, 『묘법연화경』, 서울:동국역경원, 2015. 

31 이윤기 옮김, 『종교의 기원』, 파주:열린책들, 2013. 

32 이진우 옮김, 『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 서울:책세상, 2016. 

33 찰스다윈, 송철용 옮김, 『종의기원』, 서울:동서문화사, 2016. 

34 한국융연구원 C.G. 융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 서울:솔, 2006. 

35 大場 登 · 森さゟ子, 『精神分析とユング心理学』, 東京:放送大学敎育振興會, 2019. 

36 C.G.JUNG,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New York:Dover Publications, 2019. 

37 C.G.Jung,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New York:Routledge,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