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ation on recognition of nature in Buddhism : Focusing on the meaning of Buddhist ecological education

Research
김 은영  Eunyoung Kim1*예 철해  Cheolhae Ye2

Abstract

Modern ecologists argue that human recognition and philosophy of nature must be fundamentally changed to overcome a crisis such as the ongoing pandemic. Among the many alternatives, the Buddhist view about nature based on the Buddha’s Dhamma of paṭicca-samuppāda(緣起法) has received attention in overcoming human-centered thinking. This research attempted to derive its educational role and meaning by looking at the universality and specificity of nature recognition revealed in the history of the transmission of Buddhism. The perception of nature that appeared in the process of the emergence and spread of Buddhism was different from ancient Indian religions and East Asian Confucianism and Taoism. The ancient Indian view of nature was the brahma-ātma-ekatva. Confucianism and Taoism looked at nature and human beings around the sky. In comparison, Buddhism presented the practice of the Four Noble Truths based on the paṭicca-samuppāda, and included natural objects in the subject of enlightenment through the development of the doctrine of Buddha-nature. It showed an advanced view of ecology, in which neither humans nor nature were considered equal beings without fixed entities. The educational meaning of Buddhist recognition of nature, which changed the natural view of existing society and expanded the meaning of life, can be derived as follows. First, Buddhist ecology education aims to help people realize that nature is not an object to be conquered, but a subject of mutual coexistence. Second, the educational content to achieve the aim should be selected and organized around paṭicca-samuppāda and the four noble truths. Third, the methods of Buddhist ecological education should be developed and implemented by the principles of the temperamental discourse, suitable for the learner's educational level. Last, it should be accompanied by an evaluation to ensure that the previous educational objectives, content, and methods were appropriate.

Keyword



Ⅰ. 서론

최근의 전 세계적인 이슈는 지속되는 팬데믹(pandemic) 극복일 것이다. 침팬지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 19 팬데믹의 원인은 동물 경시에서 비롯됐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물성 축산을 꼬집어 팬데믹의 원인이라고 한정하는 것은 또 하나의 환원론이 될 위험이 있다. 또한 바이러스성 질환의 대유행 외에도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도 서서히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특정한 사건으로 발현되는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현대의 생태철학자들은 환경 문제를 초래한 것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에만 가능하며, 새로운 생태적 패러다임을 추구할 것을 주창한다.

생태학의 문제가 인간의 인식과 철학의 문제로 확장되면서, 이원론적 서양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동양적 사유와 종교 전통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호상관(相互相關)의 연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불교의 자연관이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한 극복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핵켈(Ernst Haekel)이 1866년 그의 저서 『일반형태학(General Morphology)』에서 생태학(ecology)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이후, 생물과 그 환경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생태학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부각되었다. 지속가능한 지구의 생태계 유지를 위해 다양한 입장과 영역에서 담론이 이어졌고, 종교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교학 분야에서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World Religions)가 1996년부터 1998년 사이에 주최한 “종교와 생태학, 우리 행성의 미래 회의(Religion, Ecology, and Our Planetary Future Conference)”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부터 시민사회운동에 있어 환경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면서 불교생태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1 불교의 자연 인식과 교육과의 관계를 조망한 연구들도 있었다.2 한 차례의 유행처럼 연구의 열기가 식어간 이후 최근의 불교생태학 연구는 소강 상태로 보인다. 생태보다는 경제 문제로 관심을 옮긴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이슈가 희석되어 더 이상 연구 동력을 제공해주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불교생태학 연구에 내적 추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혹은 기본적 개념 정의를 위시한 연구들 이후 더 이상의 연구를 진행해야 할 유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생태를 실천 영역이 아니라 학문 영역에서 다루어야 하는 한계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새로운 문제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것이 불교생태학 연구의 불씨가 작아진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보면 불교생태학의 정의와 철학 정립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으며, 불교적 생태교육에 대해서도 방법론과 방향을 제시하는 단계 이상의 심화 연구로 나아가는 것은 미진했다. 불교라는 종교의 자연에 대한 태도가 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 고찰은 부족했던 편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불교생태학의 질적 연구 활성화와 외연 확장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이에 이 연구는 불교의 전래 과정에서 드러난 자연 인식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망하여 그 교육적 역할과 의미를 도출해내고자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불교의 자연철학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3과 생명윤리의 주체로서의 한계4라는 지적을 염두에 두었으며, 세계 종교 중 오로지 불교만이 그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과 시대가 불교와 만나면서 그 당시 자연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확장시켰던 불교의 역할을 조망하고, 현대의 새로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불교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타진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생태 위기 시대의 불교생태교육에 있어서 새로운 담론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인도에서 성립된 불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전래되었고, 현재는 북미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전파된 세계 주요 종교가 되었다. 인도에서의 불교는 수행의 과정을 거쳐 세계의 존재법칙(Dharma)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였고, 이를 통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를 극복하려 하였다. 인도불교의 이러한 성격은 대륙을 넘어 전파되었고, 전혀 다른 세계관과 문화를 가진 중국에 수용되면서 토착화를 거친다. 그 결과로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如來藏) 사상과 같은 새로운 변용이 일어난다. 이후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선종 등 독자적인 성격을 가진 새로운 종파들이 등장했고, 이는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를 통해 불교의 자연에 대한 인식도 전래 과정에서 수용과 변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고 확장하며 형성되었다고 보고,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불교의 자연 인식의 변화와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교육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붓다 재세 당시 인도 종교 일반과 불교의 자연 인식 간의 차이를 비교하여 불교만의 특징을 도출할 것이다. 다음으로, 불교의 동아시아 전래 과정에서 새로운 자연 인식의 확장이 어떻게 구체화 되었는가를 고찰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불교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오랜 역사를 거쳐 각 시대마다 새로운 자연생태관을 잉태하는 밑거름이 되어왔음을 밝히는 동시에 그 교육적 함의를 밝히고자 한다.

Ⅱ. 인도 불교의 자연 인식과 그 특징

1. 자연에 대한 인도적 관점

불교의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고대 인도의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과 비교하여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도의 자연관은 아리안족들에 의해 서기 200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베다 성전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우주관과 신(神)관을 반영한 찬가들의 모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최고의 경전인 『리그베다(Ṛg Veda)』에 따르면, 자연은 생동하는 신비스러운 존재로 그 배후에 신이라는 어떤 살아있는 인격적인 힘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하늘의 신 디야우스(Dyaus), 우주의 보호자 바루나(Varuṇa), 태양의 신 수리야(Sūrya), 불의 신 아그니(Agni), 대지의 여신 프리티비(Pṛthivī), 서광을 전하는 새벽의 여신 우샤스(Uṣas), 숲의 여신 아란야니(Araṇyānī) 등 무수히 많은 신이 각각 자연을 상징하고 있었다. 인간은 기도와 찬양, 제사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자연이나 신이라는 존재들과 관계를 가지려 하였다.

다신교의 경외적 자연관을 특징으로 하는 베다 시기 이후, 브라흐마나 시기는 제사 만능주의의 자연관으로 변모한다. 다원적 특성을 띤 개별 신들이 브라흐만이라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 수렴되었는데, 자연과 같은 우주 섭리가 일원론적 사유로 변화한 것이다. 이 시기의 자연은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의례와 장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우파니샤드 시기 중 초기에는 자연에 보편적인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우주의 근원적 원리인 브라흐만이 각양각색의 자연의 모습으로 드러났다고 인식한 것인데, 이때의 자연은 이전 시기와는 다르게 비인격적인 존재였다. 중후기 우파니샤드 및 대서사시의 시기는 브라흐만에 인격적 옷이 입혀지면서 범신론의 채색이 함께 드러나는 자연관으로 이어진다.5

베다 전통에 따라 내면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신(神)이라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도적 사유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 자연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6 특히 브라흐만에 대한 사유가 깊어지는 우파니샤드 시기에 윤회와 카스트와 같은 개념이 생겨났는데, 생명들 간의 위계의 질서가 설정된 것이다. 신과 인간과 자연의 유기체적 관계에 대해서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생명 간의 차별을 두고 자연을 도구화한 인도적 사유의 한계를 보여준다.

초기와 중·후기 우파니샤드 사이에 불교가 등장하고 대중적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불교와 인도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불교 역시 기존 종교가 제시한 윤회의 개념을 인정했지만,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의 길을 제시했다는 차이가 있었고,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드러났다.

2. 연기적 세계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과 자연과의 연속성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인간이나 자연이나 신의 피조물이라고 바라보았던 자연에 대한 인도적 관점에 비하여 불교는 자신만의 생명현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고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불교가 가지고 있는 연기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물론 현대와 과거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불교의 자연에 대한 관념을 정의하는 시도의 유용성을 의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자연관을 아예 유추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테라가타[長老偈]에서의 자연에 대한 개방성과 친근성을 발견하거나 불교의 계율 자체가 생태학적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거나 지옥도에서 불교의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론을 읽어내는 다양한 학문적 시도들이 있어 왔다.7 자연의 일부인 식물을 중생(衆生)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불교철학사 흐름에 대한 비판적 연구도 있다.8 그러나 이러한 특정한 예들 외에, 불교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생명현상인 자연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기법(緣起法)의 동의어로 이해될 수 있는 다르마(dharma)는 인도 사상에 있어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래 인간 사회를 떠받쳐 유지시켜주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다르마는 질서나 의무 등을 의미했다. 불교의 등장 이후 다르마는 우주 만물을 떠받쳐 유지시켜 주는 법칙이나 만물의 본성을 뜻하게 되면서, 그 이전에 비하여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신의 계시에 의한 불변하는 부동법(不動法)이었던 브라흐만-힌두의 다르마에 비해 불교의 다르마는 만유 보편의 법칙으로 무수한 조건에 따라 생멸하는 인연법(因緣法)이었다. 따라서 자연 만물의 원리 내지 본성으로서의 다르마는 바로 연기(pratītyasamutpādaḥ)를 의미한다. 이런 만물의 법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연기한 것[pratītyasamutpanna, 緣已生] 역시 다르마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우주 만물의 이법을 연기로 보는 것을 ‘본성으로서의 자연[法性]’으로, 연기한 일체의 존재를 ‘전체로서의 자연[法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9

자연이 이렇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한 이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법칙과 법칙의 대상이 서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불교에서의 자연은 마치 인드라의 그물처럼 수많은 조건들이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들의 연쇄 작용이다. 자연 내 구성원들 간의 인과는 단순한 선형적 관계가 아니라 원인으로 결과가 산출되고 결과가 또 다른 원인을 낳거나 기존의 원인에 재투입되는 등 복잡한 비선형으로 관계 맺어진다. 하나의 사물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전 우주와의 관계망 속에서 그 우주 전체를 반영하며, 부분과 전체를 전일적(全一的)으로 조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나 자연 역시 연기법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일부이기 때문에, 생명 간의 위계와 차별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3. 사성제의 생태적 측면

이와 같은 불교의 자연에 대한 인식은 불교교리의 주요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성제(四聖諦, cattari ariya-saccani)의 구조와도 연결된다. 앞서 살펴본 연기법이 불교적 세계관이라면, 생멸하는 연기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사성제가 있다. 이 사성제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인 고성제(苦聖諦),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인 집성제(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인 멸성제(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인 도성제(道聖諦)의 네 가지를 포괄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는 일견 부정적으로 보이는 고(苦)와 집(集)이라는 현실의 측면과 이상적인 상태인 멸(滅)과 도(道)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불교가 우리의 현실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그 현실의 문제의 현상과 원인까지도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는 괴로움의 현상으로서 고(苦), 그 괴로움의 원인이나 근거로서의 집(集), 문제가 극복된 상태인 멸(滅), 극복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도(道)가 끝없이 반복한다. 현실과 이상을 바라보고, 조화시키는 불교의 시각이 이 사성제에 함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현실도 이상도 고정되어 있거나 불변하지 않는다. 현실이 이상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이상이 현실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고(苦)가 새로운 집(集)이 되기도 하고, 도(道)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고(苦)가 되기도 하며, 멸(滅)의 상태도 영원할 수 없다. 이는 사성제 역시 고정되지 않는 무분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애(信愛)와 제의(祭儀)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당시의 인도종교에 비하여 불교는 실천의 양태도 달랐던 것이다.

이는 사성제가 연기법에 기반하였기 때문이다. 연기의 특징 중 하나인 상호의존성에 따르면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소홀히 대하여서는 안 된다. 이러한 태도는 상호존중성으로 확대되는데,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은 생태계의 구성이나 전개 양태와도 매우 유사하다. 즉, 불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부분과 전체의 전일적 융화로 이루어지는 생태계의 원리와 유사한 것이다. 현재 대두되는 생태계의 문제는 단순한 구조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복잡하면서도 나름대로 질서를 가지는 복합구조로서의 사성제적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

Ⅲ. 동아시아 불교의 자연 인식과 구체화

1. 유(儒)·불(佛)·도(道)의 자연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는 기존의 사상과 문화와 접합하면서 새로운 불교로 변용된다. 그중에서도 불교의 자연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사상계를 함께 이끌던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의 자연관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유교와 도교가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 종교이자 철학적 인식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유교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도교는 비현실적이고 신비롭고 불사(不死)를 지향했다. 반면 불교는 전생과 윤회라는 생명의 순환을 설명해주는 참신한 종교였다. 서로 다른 종교들의 기본 입장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반영되어 있다.

자연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았던 것은 도교였다. 『장자(莊子)』에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의미 차원을 벗어난 자연과 타연(他然)을 구분하여 도(道)는 자연이지 타연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도의 관점에서는 귀하고 천한 것의 구분도 없어진다. 이것은 현대의 물질적 자연과는 다른 존재로 스스로[自] 그렇게 된 것[然]으로 도의 운행의 모습으로서의 자연이었다. 자연을 목적론적 체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도 간직하지 않은 무위(無爲)로 본 것이다. 이 무위의 세계에는 무목적의 질서가 내재되어 있고, 인간도 이런 자연의 질서를 따라 무위의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공자의 유교는 도교와 다른 입장이었다. 자연을 주요 관심사로 두었던 도교에 비하여, 유교는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바꾸어 설명하는 좀 더 현실적인 입장이었다. 생명 창생(創生)의 자연 과정으로 천도(天道)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연의 이치가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깨달은 성인이 자연과 합일[天人合一]하였다고 생각했다. 순자는 이와 다르게 자연이 의식 있는 존재임을 부정하였으나, 하늘과 땅을 만물의 근원으로 보아 하늘과 땅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만물이 생겼다고 보았다. 도교에 비하여 유교는 하늘을 중심으로 자연을 이해했으며, 자연에 대해 인간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10 자연에 대한 유교과 도교의 해석은 인위(人爲)와 무위(無爲)로 달랐으나 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이 없지 않았다.

반면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생명이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다고[因緣生起] 보았다. 동아시아 불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존의 전통으로서 모든 존재의 비실체화를 더욱 심화시켰다.11 특히 누구나 부처가 될 가능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을 최초로 논한 『대방등여래장경(大方等如來藏經)』12, 또 여래장을 불성의 의미로 해석하여 일체의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一切衆生悉有佛性]라고 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13을 통해 중생에 자연을 포함하고 모든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자비와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삼론종의 길장(吉藏, 549~623)은 초목(草木)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초목성불론을 『대승현론(大乘玄論)』에서 밝히기도 한다.14 이전 시기 불교에 있어 식(識)이 없는 존재라 업(業)을 짓지 않으므로 성불의 대상이 아니었던 초목과 같은 자연이 동아시아에서는 불성론(佛性論)의 주요 논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일련종(日蓮宗)이나 승려 안넨[安然]에 의해 무정성불을 주창되었던 기록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바탕으로 도출할 수 있는 불교의 자연관은 다음과 같다. 인간과 동물과 식물, 바위 같은 모든 자연의 존재는 고정된 실체 없이[無常] 변화하는[苦] 생명[無我]으로 동등하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이 상의상관(相依相關)으로 연결되어 있다. 깨달음(菩提)을 추구하는 모든 생명이 자연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자신과 동등한 존재임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자인 것이다. 동아시아불교에 일반화된 비정불성론(非情佛性論)을 통해 유교와 도교의 자연관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동시에 인도 불교에 비해 동아시아 불교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다는 변화를 알 수 있다. 이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구분마저 한순간에 타파한 태도였다.

2. 불교예술에 나타난 자연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이 동아시아에서도 예술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고대에는 유·불·도 삼교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 전반의 인식 체계가 구성되었고, 그 사상이 구체적 이미지로 구현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 불교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전 분야에 걸쳐 가장 많은 조형물이 남아 있는 종교이다.

앞에서 살펴본 불교의 자연관은 불교 예술에서도 드러나는데,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돈황 석굴의 비천도(飛天圖)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동아시아의 고대 불교는 기존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 따라, 하늘을 자연의 근본으로 보고, 도교의 신선과 연결시켜 자연에 귀의하려는 사상을 그림으로 나타냈다.15 이러한 경향은 불교가 기존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와 습합되어 가며, 하늘과 같은 특정한 자연의 형태에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불교는 경전에 근거한 의례나 형식 등을 중요시하였고, 이에 다양한 불교미술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인 선종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화려한 불교예술을 뒤로 하고 특정 승려나 조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선종화(禪宗畵)가 등장한다.16 여백의 미를 살리며 직관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선종화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종종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자연물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불화 1점, 동물화 2점, 모두 3폭이 한 벌로 구성된 승려 목계(牧溪)가 그린 <관음원학도(觀音猿鶴圖)>가 대표적인 예이다. 관음보살도를 중심으로 강풍에 흔들리는 원숭이와 숲에서 튀어나오며 우는 학이 양 옆으로 그려진 이 그림에서 동물들은 세속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원숭이나 학도 관음보살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자연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17

이러한 경향은 심우도(尋牛圖)에서도 엿보인다. 묵조선 수행자 보명(普明)과 간화선 수행자 곽암(廓庵)은 심우도를 통해 깨달음의 단계를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로 각각 표현했으나, 인간의 본성을 소로 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자(童子)와 소[牛]를 통해 깨달음의 과정을 10단계로 그린 이 심우도에서 소는 깨달음[覺]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심우도는 송(宋)대에 등장하여, 우리나라에도 전해져서 거의 모든 사찰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전파되었다. 베트남에서는 소 대신 코끼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깨달음이나 인간의 본성을 동물로 표현했다는 것은 당시 불교에서 자연을 인간과 다른 하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평등한 생명으로 인식했으며, 동시에 그러한 자연 인식이 대중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3. 사찰의 생태적 구조

사찰의 건축 형태는 그 자체로 생태적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무위(無爲)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도교는 건축이라는 인위적인 형태를 지양했다. 조상-나-자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영구성을 추구하는 유교에서는 가문을 보호하는 공간이 필요했고, 여기에서 유교 건축이 시작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집권 지배층이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도성은 물론 각 지방 중심부에 종교, 문묘, 사직단 같은 관련 시설들이 건립된다. 이런 유교적 건축물들은 기본적으로 조상이나 성인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관점은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유교라는 동일한 정치이념이 오랜 역사 시간 동안 축적되면서 건축 양식에도 반영되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었던 유교 건축에 비하여 불교의 사찰은 탈정치적이고 보다 자연적이었다.

상가람마(Samgharama)라는 어원을 가진 사찰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竹林精舍)를 기원으로 승려들의 수행처와 공동 주거지로 정착되어가다가 종교 의례를 집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그 성격이 발전되어 갔다. 그리고 교세가 확장되어감에 따라 조형 예술과 함께 불교만의 건축양식을 구축하게 된다.

특히 전통 사찰은 대부분 산(山) 중에 위치하고 있는데,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세계관에 입각해 일정한 법칙성을 가진다.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중생이 윤회를 반복하는 미혹의 세계가 있고, 이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구분된다. 중생이 살고 있는 남섬부주(南贍浮洲)에서 수미산 위의 삼계의 고해를 지나 깨달음의 세계로 가려면 향수해(香水海)라는 곳을 지나야 한다. 그래서 전통 사찰에 이르기 전에 일반적으로 냇물을 가로지르는 열반교(涅槃橋), 해탈교(解脫橋), 혹은 극락교(極樂橋)라고 부르는 다리가 놓인다. 다음으로 수미산 입구에 해당하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수미산 중턱의 천왕문(天王門)에 이르고, 수미산 꼭대기로 들어가는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면 대웅전(大雄殿) 안의 수미단 위에 앉아 있는 부처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우주관을 바탕으로 입지를 정한 사찰들은 다른 어떤 건축 형태보다 생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향수해나 수미산을 구현하기 위해 물과 산이라는 자연 지형이 필요했고, 연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존의 자연에 사찰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건축을 구현하였다.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한 수행 공간으로서 사찰은 그 자체가 생태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찰이라는 전통 건축에서 나타나는 생태적 특징이 비록 과거에는 불교적 우주관을 투영한 무의식적인 행위에서 비롯되었더라도, 현대적 관점에서도 생태적으로 조화롭다는 평을 받는 것 역시 사찰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생태적 특징 때문일 것이다.18

Ⅳ. 결론 : 불교생태교육적 의미

지금까지 불교라는 종교가 발생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관을 인도 고대 사상, 그리고 동아시아의 유교와 도교의 자연관과 개괄적으로 비교해 보았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신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을 인식했던 범아일여(梵我一如)적 인도적 자연관에 비하여 불교는 연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생명현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사성제라는 실천 행태를 제시하며, 보다 진일보한 생태관을 보여주었다. 동아시아로 전래된 불교는 기존의 하늘을 중심으로 인위(人爲)와 무위(無爲)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았던 유교과 도교와는 입장이 달랐다. 불성론 전개를 통해 자연물들까지 깨달음의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인간도 자연도 고정된 실체 없이 동등한 존재로 여긴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깨달음의 주체로서의 자연을 표현한 선종화(禪宗畵)나 공간 구축 자체가 생태적이었던 사찰의 구조에 구체적으로 구현되었다. 불교의 자연 인식이 기존 사회의 자연관에 변화를 주고 생명의 의미를 확장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 다음과 같은 교육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의 과정(過程, process)은 교육 목표 설정, 교육 내용의 선정과 조직, 교육 방법, 그리고 교육 평가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육의 과정에 불교의 자연과 생명 인식이 갖는 불교생태교육적 의미를 접목시키면 다음의 네 가지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육 목표의 차원이다. 교육 목표는 교육의 과정(過程, process)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단계이다. 교육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교육 내용, 교육 방법, 그리고 교육 평가까지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불교생태교육의 목표는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공존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교육 내용의 차원이다. 불교생태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 내용은 연기(緣起)와 사성제(四聖諦)를 중심으로 선정하고 조직해야 한다. 이 연기와 사성제가 불교생태교육의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진리로 모든 존재의 법칙을 드러낸 연기법을 바탕으로 한 불교의 세계관은 역사적으로 삼계[欲界·色界·無色界], 혹은 세간(世間) 등의 개념으로 구체화 되었다.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닌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 모두 각각의 존재로서 평등하다. 또한, 연기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사성제는 부정[苦集]과 이상[滅道]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고 순환하며 조화를 이룬다. 고정되지 않은 무분별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성제는 복잡하면서도 나름대로 질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분과 전체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적합하다.

셋째, 교육 방법의 차원이다. 불교생태교육의 방법은 불교의 교육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대기설법(對機說法)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대기설법은 적절한 방편시설(方便施設)과 맥락적 교수법으로 개별화의 원리에 따라 학습자의 능력과 관심사와 필요성 등에 따라 문제 해결 교육을 중요시한 불교의 대표적 교육 방법이다.19 이 원리에 따라서 현대에서도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에서 각기 교육 단계에 맞는 교육 방법을 개발해서 실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아교육에서는 아동의 흥미에 맞추어서 놀이를 통한 교육 방법을 개발하여 접목시켜야 한다. 그리고 초·중등교육에서는 학생들의 경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 방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넷째, 교육 평가의 차원이다. 교육 평가의 목적은 단순히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 교육 평가의 목적은 교육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었는 지를 점검하고 성과를 판단하고, 교육 내용이 제대로 선정되고 조직되었는 지, 그리고 교육 방법이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는 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교육 평가의 목적은 교육의 전체 과정(process)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평가의 목적에 비추어 봤을 때, 불교생태교육의 목표인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공존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달성되었는 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 내용인 연기와 사성제가 제대로 선정되고 조직되었는 지 확인해야 한다. 끝으로 교육 방법이 불교생태교육의 방법으로써 적절하고 유용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상으로 불교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동시에 불교생태교육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불교가 인류의 주요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생명과 자연에 대한 지혜와 자비의 생태적 측면의 뛰어남에 있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불교의 역할에 대한 생태교육적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요약

생태학에서는 지속되는 팬데믹(pandemic)과 같은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호상관(相互相關)의 연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불교의 자연관이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한 극복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이에 이 연구는 불교의 전래 과정에서 드러난 자연 인식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망하여 그 교육적 역할과 의미를 도출하려고 시도하였다. 불교가 발생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 인식은 인도 고대 사상과 동아시아의 유교와 도교의 자연관과는 차이가 있었다. 인도의 자연관은 범아일여(梵我一如)적이었으며, 유교와 도교는 하늘을 중심으로 인위(人爲)와 무위(無爲)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았다. 불교는 연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성제라는 실천 행태를 제시하였으며, 불성론 전개를 통해 자연물들까지 깨달음의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인간도 자연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 평등한 존재로 여기는 진일보한 생태관을 보여주었다. 기존 사회의 자연관에 변화를 주고 생명의 의미를 확장시킨 불교의 자연 인식의 교육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불교생태교육의 목표는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공존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불교생태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 내용은 연기(緣起)와 사성제(四聖諦)를 중심으로 선정하고 조직해야 한다. 셋째, 불교생태교육의 방법은 대기설법(對機說法)의 원리에 따라 학습자의 교육 단계에 맞는 교육 방법을 개발해서 실시해야 한다. 넷째, 앞의 교육 목표와 내용과 방법이 적절하였는지 확인하는 평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주제어

불교생태학, 중생, 자연, 생명, 생태교육

Endnote

1 김종욱, 『불교생태철학』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4); 서재영, 『선의 생태철학』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7) 등을 위시한 다수의 연구물들이 발표되었다. 박경준, 「한국의 불교생태학 연구동향」, 『철학사상』 제41권 (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1) 등에서는 이러한 연구 경향에 전반에 대해 분석하기도 하였다.

2 박성자, 「불교사상에 나타난 생태적 교육관 고찰」 (전북대학교 교육학과 박사학위논문, 2007); 배유미, 「환경 윤리 교육의 불교 생태학적 접근」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예철해, 「불교생태학의 주요 원리를 실천하기 위한 생태교육의 방향」, 『종교교육학연구』 제23권 (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06).

3 Malcolm David Eckel, “Is There a Buddhist Philosophy of Nature?,” Philosophies of Nature: The Human Dimension (Dodrecht; London: Kluwer Academic, 1998).

4 최현민, 「생태위기 극복의 동반자로서의 불교와 그리스도교」, 『종교교육학연구』 제28권 (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08).

5 한면희, 「힌두교와 자연관, 그리고 생태윤리」, 『환경철학』 제9권 (서울: 한국환경철학회, 2010), p.153, pp.160-165.

6 배상환, 「기독교 자연관과 불교의 자연관」, 『학제적 연구로서의 불교생태학』(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7), p.201.

7 심재룡, 「인도의 불이론적 자연관과 중국 도가의 기술문명론」, 『철학사상』 제15권 2호 (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2), p.87에서 재인용 및 재검토.

8 우제선, 「식물은 중생인가: 불교의 생명 인식」, 『종교교육학연구』 제26권 (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08), p.37.

9 김종욱, 『불교생태철학』(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4), pp.143-144.

10 이유미・손연아, 「동아시아, 서양의 자연의 의미와 자연관 비교 분석」, 『한국과학교육학회』 제36권 3호 (서울: 한국과학교육학회, 2008), pp.487-488.

11 정재현, 「동아시아 자연관의 몇 가지 특성들」, 『동서철학연구』 제41호 (서울: 한국동서철학회, 2006), p.18.

12 如是善男子!一切眾生有如來藏,如彼淳蜜在于巖樹,為諸煩惱之所覆蔽,亦如彼蜜群蜂守護。我以佛眼如實觀之,以善方便隨應說法,滅除煩惱開佛知見,普為世間施作佛事. (『大方等如來藏經』, T. 16, 457c).

13 一切衆生 悉有佛​性 無明覆故 不得解脫. (『大般涅槃經』, T. 12, 522c).

14 "以依正不二故 衆生有佛性 則草木有佛性. (『大乘玄論』, T. 45, 40c).

15 최병식, 「미술사 논단: 동양미술과 자연관의 관계」, 『월간미술』 4월호 (서울: 월간미술, 2000), pp.172-174.

16 한정희・최경현, 『동아시아의 미술』(파주: 돌베개, 2018), p.174.

17 위의 책, pp.180-181.

18 조정식,「한국 불교건축과 경관의 생태학적 구조」, 『학제적 연구로서의 불교생태학』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7), pp.251-252.

19 김용표,「붓다의 교육원리와 수기적(隨機的) 교수법: 진리와 방편의 역동적 연관성을 중심으로」, 『종교교육학연구』 제25권 (서울: 한국종교교육학회, 2007), p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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